대기업들, 녹색산업에 투자 보따리 푼다

불황 이후 대비 공격적 투자
삼성, 현대·기아차만 9조 넘어

현대 · 기아자동차가 22일 친환경차 개발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3년까지 4조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향후 5년간 5조4000억원을 환경 부문에 투입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그린산업을 경제위기 이후를 대비한 신성장동력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 · 기아차가 2013년까지 녹색산업에 투자키로 한 금액만 모두 9조5000억원에 이른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대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8세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생산라인 증설,LCD 유리기판 공장 신설 등에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한 LG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반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아진 데다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 등이 위축됐던 대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되돌려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녹색경영은 생존의 필수조건

현대 · 기아차가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개발,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공정개선 등에 대대적으로 투자키로 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유럽을 중심으로 당초 예측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서다.

프랑스는 최근 ㎞당 13g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자동차에 대해 환경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수입 자동차 가격을 비싸게 만들어 역내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프랑스 이외의 유럽 주요 국가들도 금명간 유사한 수준의 자동차 탄소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경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면 세계 일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감안해 대대적 투자계획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2013년까지 5조4000억원을 녹색경영에 투입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자동차에서 시작된 환경규제가 전자업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데다 친환경 제품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친환경 투자'가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정책방향을 꼽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 · 15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선포했으며 주요 경제부처들도 기후변화종합대책을 포함한 다양한 환경산업 진흥책을 마련 중이다. ◆불황 이후 먹거리를 찾아라

불황 이후를 노린 '신성장동력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LCD(액정표시장치) 부문에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5일 8세대 LCD 라인에 3조27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TV 메이커들의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늘어 시설투자 시기를 앞당겼다. 삼성전자도 8세대 LCD 라인을 추가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17일 LCD용 유리기판 생산시설을 만들기 위해 총 1조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2018년까지 LCD 유리기판으로 2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 규모를 조정한 곳도 있다. 한화는 연초 계획보다 2000억원 늘린 1조8000억원으로 올해 투자 계획을 확대했다. 늘어난 예산은 신사업 육성에 활용할 계획이다. SK도 올해 그룹 R&D(연구 · 개발)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18% 많은 1조30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재계에서는 기업들의 투자 열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세제 혜택을 약속한 R&D 부문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경련이 이날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년 R&D 투자 계획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기업의 55.5%가 내년 R&D 투자를 올해보다 5% 이상 늘리겠다고 답했다. 10% 이상 늘리겠다는 답도 22.2%에 달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