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출구전략보다 시급한 것

경제선방은 소비자금융 안정 덕분, 카드공제 유지ㆍ내수기반 더 다져야
경제에 대한 조기회복 기대감이 커짐에 따라 주식시장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발생 이후 우리 경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항하고 있다. 당초에 우리 경제는 다른 선진국보다 경기침체 폭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세계경제 침체로 인한 수출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기발생 직후 급격히 감소했던 수출은 다시 회복되는 추세에 있다. 이는 중국의 대대적인 소비부양책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원화의 평가절하로 인해 우리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향상된 데 있다. 그러나 우리경제 선방의 근본원인은 내수부문의 안정에서 찾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정부는 올해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등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우리의 소비자 금융부문이 안정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2003년도 소위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 기여한 바가 크다. 2002년까지는 우리 신용카드산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신용카드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그런데 신용사업의 특성상 초기에는 신규가입자의 대금 연체율이 낮으므로 신규회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회원 전체의 연체율은 하락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신규회원 가입자가 줄어들면 전체 연체율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용카드사들은 단기수익에 급급해 회원확보에만 노력을 경주하고 신규회원에 대한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회원 수가 정체되자,연체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사는 대규모 대손상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상당수 신용카드사는 부도위기에 몰려 채권은행단이나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소생했다. 이런 경험을 한 신용카드회사들은 고객에 대한 신용평가를 철저히 하고 신용위험이 큰 고객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축소경영으로 나아갔다. 이미 이러한 조치들이 취해졌기 때문에 이번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연체율의 급격한 상승은 없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소비부문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정부는 재정확대로 인한 재정수지악화를 보전하기 위해 그동안 시행해오던 세금 관련 각종 공제제도를 폐지 내지 축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중 하나가 신용카드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한도 축소다.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제도는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제도다. 소득의 투명성 제고와 세원확대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제도는 세수기반의 확대와 세수증가에 기여했다. 또한 우리 신용카드산업의 양적 성장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소득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국민의 납세의무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면,이 제도는 마땅히 폐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납세의식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이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또다시 소득의 불투명성이 커지고 세수는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로 인해 신용카드 사용액이 감소하면 신용카드회사들은 수입보전을 위해 현금서비스부문을 늘리게 되고 이는 다시 연체율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게 돼 내수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 외환시장이 안정화하면서 원화 역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우리 수출증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수부문에서까지 교란요인이 발생하면 우리는 세계경제 회복기의 경제운용정책,즉 출구전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ㆍ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