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사라져가는 '자수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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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大 부자중 창업자 韓22명, 美71명20세기 말엽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쯤이었다. 이제는 15위가 됐다. 전망도 밝지 않다. 더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가 결국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절망하는 이들도 있다. 명쾌한 진단도 시원스러운 처방도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침묵은 상징적이다. 경제 위기에 대처하느라 여유가 없겠지만,그래도 '747'이라는 공약을 내세웠던 지도자의 침묵은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물갈이 자연스러워야 건강한 시장
우리 경제가 이처럼 뒤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내 나오는 답은 우리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정이다. 우리 경제가 시장경제이므로,이것은 뻔한 얘기(truism)에 가깝다. 그래도 이런 진단은 뜻을 지녔으니,시장에 아주 적대적인 정책을 편 노무현 정권 아래서 우리 경제는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을 보였다. 우리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까닭은 여럿이다. 전통 문화의 뿌리 깊은 상업 천시,관리를 선망하는 전통적 풍조와 기업가 정신의 퇴조,정부 부문의 꾸준한 확대와 시장 부문의 축소,시민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반감,재산권의 불충분한 보호,기업 활동에 대한 지나친 규제,비현실적인 노동법,전투적 노동조합,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보호무역 조치들은 잘 알려진 것들이다. 덜 알려진 것은 대기업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정부의 정책이다.
수많은 기업들과 개인들이 활동하는 마당이므로,시장은 활발히 진화한다. 시장경제가 명령경제보다 우월한 사정은 그 사실로 많이 설명된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선택 과정이다. 열등한 것들은 사라지고 우수한 것들이 살아남아서 열등한 것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과정이다. 슘페터의'창조적 파괴'는 바로 이런 선택 과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실패는 시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징후가 아니다. 이번의 경제 위기처럼 많은 기업들이 실패한 경우도 그렇다. 오히려 실패가 드문 것이 시장의 이상을 알리는 징후일 수 있다. 영국 경제학자 브라이언 로우스비의 말대로,"시장의 실패를 보이지 않는 시장은 시장으로서 실패한 것이다(A market which exhibits no market failure is a failure as a market)".그러나 어느 정부든 실패를 두려워한다. 특히,기업의 파산이 불러올 정치적,사회적 파문을 걱정한다. 그래서 정부는 흔히 병든 기업들이 연명하도록 돕는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 자연히,새로운 기업이 크게 자라나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의 100대 부자들 가운데 스스로 창업한 사람들은 22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반면에 미국의 100대 부자들 가운데 창업한 사람들은 71명이나 되었다. 가장 부유한 빌 게이츠,워런 버핏,로렌스 엘리슨이 모두 창업자들이라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매출액이 1조원을 넘는 한국 기업들은 147개인데,1980년대 이후 생긴 기업들은 겨우 2개다.
미국의 경우,마이크로 소프트,야후,오라클,아마존,이베이,구글과 같은 널리 알려진 기업들이 근년에 새로 생겼다. 미국이 이미 원숙한 사회고 우리는 아직 빠르게 자라나야 할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우리 경제가 이처럼 활력을 잃은 것은 더욱 걱정스럽다. 처방은 간단하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시장의 판단을 교정하려는 충동을 정부가 억제하는 것이다. 시장이 실패했다고 판정한 기업들이 퇴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새로운 기업들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복거일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