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뇨'의 귀환] '슈퍼 엘리뇨' 공포! 가뭄·폭설·홍수…'도깨비 날씨'에 지구촌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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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인도 최대의 밀과 감자 산지인 펀잡.이 지역에선 올초부터 지금까지 비 한 방울 찾아보기 힘들다. 인근 우타르 프라데시주 역시 7월 들어 단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는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가뭄은 북부 비하르주도 덮쳤고 뭄바이의 물 공급은 30%나 줄었다. 더 큰 문제는 가뭄이 전통적인 장마철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는 지난 6월 80년 만의 가장 적은 강우량을 보인 데 이어 7월에도 예년보다 적게 비가 오면서 농작물 작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통 6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는 인도 몬순이 이처럼 늦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엘니뇨의 귀환'을 꼽고 있다.
◆'퍼펙트 엘니뇨' 공포 현실화될까
엘니뇨(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가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열대 해상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가뭄과 홍수 등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 태평양 적도대의 수온이 평균치보다 1도 가까이 올랐으며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엘니뇨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바닷속 150m 깊이의 수온은 무려 4도 올라간 것으로 측정됐다. 한동안 뜸하던 엘니뇨의 공포가 재발한 것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보통 동태평양에 인접한 남미지역에선 홍수가,서태평양 인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선 가뭄이 발생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겨울철에 엘니뇨가 발생하면 이상고온 현상이나 폭설피해가 잦아지고,여름철에는 기온 · 강수량의 변동폭이 커져 '물폭탄'이라 불리는 집중호우 발생이 잦아지게 된다. 특히 올해는 10여년 만에 초대형 엘니뇨가 될 가능성이 높아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8년 20세기 최대 규모의 엘니뇨가 발생했을 땐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크게 늘면서 세계적으로 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920억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다.
이번에 발생한 엘니뇨는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 세력을 키워 북반구가 겨울이 되는 연말께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0여년간 대형 엘니뇨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엘니뇨가 '슈퍼 엘니뇨''메가 엘니뇨'로 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NOAA는 9~10월께 엘니뇨 강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1998년 이후 대형 엘니뇨의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호주 기상청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엘니뇨 현상이 발달을 멈출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타들어가는 서반구대형 엘니뇨의 전조격으로 올해 동태평양 지역에서 엘니뇨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최근 태평양 서쪽에 있는 유라시아 대륙은 타들어가고 있다. 인도에선 80여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 직면해 쌀 사탕수수 밀 등 농작물 작황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콩 재배 면적은 지난해 400만㏊에서 380만㏊로 줄었고 사탕수수 재배 면적도 10만㏊나 급감했다. 쌀 수확도 전년에 비해 200만t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중국도 연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상하이시는 지난 20일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자 기상경보시스템을 가동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이날 최고 온도는 상하이시가 온도를 측정한 지난 137년 동안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호주 역시 100년 만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고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도 엘니뇨로 수확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아프리카도 이상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케냐에선 올해 290만명이 가뭄으로 인한 기근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이상기후 빈발엘니뇨의 직격탄을 피한 지역은 간접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가 결합되면서 이상기후의 강도와 발생빈도가 크게 높아지는 추세다. 지구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돼 대기 중에 증가된 에너지를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대기와 해양이 상호 작용,엘니뇨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최근 남동부와 중서부의 경우 이상저온,서부는 이상고온에 시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는 최근 이상저온으로 긴팔 옷을 입거나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었다. 앨라배마주 버밍햄은 최저 기온이 예년보다 10도가량 낮은 15도로 1947년(15.5도) 기록을 깼다. 반면 텍사스주 댈러스는 연일 38도 이상의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생겨난 '변종 엘니뇨'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 조지아 공대 연구진은 사이언스지 최신호를 통해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의 수를 줄이는 전통적인 엘니뇨와 달리 새로운 '엘니뇨 모도키'는 대서양에 대형 허리케인 발생빈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대서양 지역에서도 변종 엘니뇨가 등장하며 피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 엘니뇨가 찾아올 경우 식량위기를 포함해 국제사회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 상품거래소 관계자들이 엘니뇨의 등장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