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前 한국코카콜라 부사장 "환갑에 아프리카 봉사…장관 친구도 부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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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탄자니아서 공무원 교육장마가 주춤하면서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한국국제협력단(KOICA) 서울 염곡동 훈련센터.2009년 5차 해외봉사단에 선발된 사람들 가운데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신사가 탄자니아 출신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 다. 그는 지난 33년 동안 서통P&G 이사와 ㈜서통 상무,라파즈-한라시멘트 전무 등을 지내다 한국코카콜라음료 부사장으로 지난해 직장 생활을 마감한 이재성씨(60 · 사진)다. 이번 훈련생 중 최고령이다. 이 전 부사장은 이르면 다음 달 중순부터 2년간 탄자니아 중소기업청(SIDO)에서 현지 공무원과 기업인들에게 마케팅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다.
이제 겨우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인생의 여유를 맛볼 수 있게 된 그가 환갑의 나이에 아프리카의 낯선 나라로 떠나기로 한 이유는 뭘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꼭 한번 봉사활동에 참여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아프리카 각국에서 공격적으로 자원 외교를 펼치는데,우리는 봉사 외교라도 열심히 펼쳐야 하지 않을까요. " 그는 "아프리카가 우리 생각만큼 먼 나라가 아니다"며 "어떤 식으로든 교류를 늘려 나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의 봉사활동에 대해 가족들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선뜻 동의해 줬다고 한다. 이 전 부사장의 부인은 인천시립교향악단 단원이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딸과 함께 지난 3년간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이미 봉사의 기쁨을 맛보았다. 라파즈-한라시멘트에 근무할 때는 기업이'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개인도 그런 일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세계 인구 60억명 가운데 10억명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봉사라고 생각해요. "이번 해외봉사단원 국내 훈련은 오는 31일까지 4주 동안 계속된다. 모두 123명이 참여했으며,교육 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12개국으로 나눠 파견된다. 이들은 합숙하면서 현지어와 문화,한국 역사,교수법,산악 행군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토요일에만 외박이 허용된다. 이 전 부사장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50세 이상 직장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온화한 인상의 이 전 부사장은 알고 보면 학창시절 필드하키 선수로 활동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도전을 즐긴 그는 "젊은이들 틈에 섞여 스와힐리어와 현지 문화를 배우며 아프리카에 다가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에게 아프리카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다.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한조각 있을 뿐."예전에 아프리카의 어떤 비행기를 탔다가 짐을 몽땅 잃어버렸어요. 처음엔 화가 났는데,나중엔 되레 동정심이 생기더군요. "
"친구들 중 장 · 차관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는데,모두들 저를 부러워합니다. 마음은 있는데 실천을 못하는 거죠.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 전 부사장은 기자에게 "아싼테(스와힐리어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그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교실로 돌아갔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