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로얄&컴퍼니빌딩‥미술관 로비? 이곳은 회사다

사람을 압도하는 딱딱한 건 물대신 누구나 찾을수 있는 예술의 공간으로

서울 강남 논현동 지하철 학동역 네거리 인근 대로변에 자리잡은 로얄&컴퍼니(옛 로얄 TOTO) 빌딩.민간 상업용 빌딩인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소통'하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대부분 도심 빌딩들이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위압적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기존 빌딩들은 볼일이 있는 사람들의 접근 이외에는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폐쇄성도 매우 강하다.

반면 로얄&컴퍼니는 건물의 안팎이 기존 건물과 느낌부터 다르다. 건물 외관도 장식을 배제한 채 단순하게 꾸며졌다. 직사각형 조형 요소만을 깔끔하게 조합해 정갈하게 디자인됐다. 이지적인 분위기도 묻어난다. 화려한 장식과 조형미로 잘 다듬어진 빌딩은 보기엔 좋고 아름답지만 친근하게 다가가기 힘들다. 거대한 공간과 조형물 그 자체가 사람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옥이나 초고층 건물들은 이 같은 기운이 특히 심하다. 여기에 외부 방문객의 접근이 어렵도록 꼼꼼하게 관리까지 하기 때문에 그 폐쇄성은 더욱 커진다.

로얄&컴퍼니 빌딩은 기존 빌딩의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설계자와 건축주가 머리를 맞댔다. 소통과 공감을 충분히 살려서 '사람의 체취'가 풍기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건축주는 욕실 전문기업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소통 · 공감이 가능한 건물 설계를 할 수 있는 건축가를 찾느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비움'의 건축철학으로 유명한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를 만났다. 민 교수 역시 건축주의 희망사항과 자신의 건축철학에 관한 궁합이 맞다는 생각에 흔쾌히 허락했고,즐겁게 작업을 했다. 일단 해당 부지의 특성부터 철저히 파악하고 비움을 통해 공간을 채우는 민 교수만의 주 특기로 건물을 탄생시켰다.

우선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를 하나의 공간으로 튼 다음 계단으로 연결시켰다. 방문객들이 길에서 건물로 부담 없이 들어오도록 했다. 내부도 밖에서 훤히 보이도록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스럽게 트인 공간에 2,3층으로 연결되는 멋진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층 연결계단은 면적을 더욱 넓혀서 지하에 대한 부담을 없앴다.

1,2층에는 아담한 갤러리와 북카페,와인바,식당 등이 배치됐다. 지하층엔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인 욕실용품이 깔끔하게 전시돼 있다. 갤러리에서는 이른바 '잘나가는' 작가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무명 작가들을 특별히 발굴해 무료 전시를 해준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계단 공간도 놓치지 않고 미술과 조각작품을 배치,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점.작품들은 지하 계단까지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방문객들은 어느새 욕실용품 전시장까지 닿는다. 건축주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상품)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건물이 아름다운 것은 이곳 때문만은 아니다. 건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도 같이 쉴 수 있게 돼 있다. 입구 반대편 데크 공간도 시원스럽게 쉼터로 내놓고 있다. 6층도 재미있다. 건물을 두 개로 쪼개고 그 사이에 녹색공간을 만들어 외부인 접근이 가능하게 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문화교실로 운영된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