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은 총재의 고민…10월前 금리인상 어려울듯

EXIT 보이는 듯 한데 '출구 전략' 펴긴 어렵고‥
막대하게 풀린 시중자금 자산버블 초래할까 신경
성장률 추이 예의주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별명은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다. 인플레(물가상승)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재앙으로 보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무엇보다 물가안정에 주력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 총재는 카드 사태의 후유증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던 2004년 11월 정부의 기대나 다른 금융통화위원(당시 이 총재는 부총재로서 금통위원 겸직)들의 선택과는 달리 유일하게 금리인하에 반대한 일로 유명하다. 통화정책의 원칙론자인 이 총재가 임기만료를 8개월여 남겨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사상 최저인 연 2.0%까지 낮춰 놓았는데 이를 언제쯤 되돌려 놓느냐를 고심 중이다. 이른바 출구전략(Exit Strategy · 위기 때 풀어놓은 유동성 환수조치)을 언제 시행하느냐는 문제다.

이 총재는 경제가 작년 4분기엔 -5.1%(전기 대비 기준)로 고꾸라졌지만 올 들어선 1분기 0.1%,2분기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이는 와중에 부동산과 주가 등 자산가격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물가상승률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지만 저금리와 위기극복을 위해 풀어놓은 막대한 돈이 자산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부동산 버블 등이 다시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은 간부들은 이 총재가 연 2.0%의 초저금리를 너무 오래 유지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전대미문의 위기에 따라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내려놓았지만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극복된다면 경기회복세에 맞는 수준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최저 금리는 2004년 11월~2005년 10월의 연 3.25%였다.

지난달 11일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가 "경기 하강세가 끝났다"고 선언한 것은 시장에 나름의 신호를 주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6월 중순 이후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제가 더블딥(경기반등 후 다시 침체국면 진입)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선 수위를 조금 낮췄다. 지난 17일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선 "당분간 출구전략이 없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이 총재는 2분기 성장률이 2.3%로 서프라이즈 수준을 기록했다는 보고를 접하고도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한다. 한은의 한 간부는 이 총재가 '찜찜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전했다. 자동차 세제혜택,재정 조기집행 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에서다. 이 총재는 특히 3분기부터는 정부 정책효과가 약화되기 때문에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점을 걱정하고 있다. 여기에다 글로벌 경제도 여전히 부진하다. 이 총재가 기자회견이나 공식석상에서 '불확실'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현재까지 '경기냐 물가안정이냐'라는 기로에서 경기를 택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3분기 국내총생산(GDP) 통계가 나오는 10월 말 이전까지는 현재의 선택을 이어갈 예정이다. 만약 3분기 GDP가 안 좋게 나오면 내년 초까지도 확장적 통화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

한은 안팎에선 그러나 이 총재가 임기만료일(내년 4월2일) 이전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거나 이를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표현을 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부동산 버블이 커졌으며 이 때문에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는 점을 이 총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