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입학사정관제 성공조건

요즘 교육계 최대의 이슈는 '입학사정관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언급하면서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임기 말쯤 가면 아마 대학들이 거의 100% 입시사정을 그렇게(입학사정관제로) 하지 않겠느냐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이 전파를 타고 번지자 교육현장에서는 "2012년까지 100% 입시사정이 가능하겠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현재 6%(2010학년도 47개 대학 2만695명) 수준인 입학사정관전형 선발인원 비중을 3년 내에 100% 가까이 끌어올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대통령의 발언으로 잠시 소란스러워지긴 했으나 입학사정관제는 교육계에선 보기 드물게 반대가 적다. 정부가 교육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로 양분됐던 전례에 비춰보면 희한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입학사정관제는 점수보다 학생의 성장배경이나 잠재력만으로 대입 합격자를 선발하는 제도다. 문제만 잘 푸는 학생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는 정신이 입학사정관제에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정책이라면 쌍수를 들고 반대해 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사정관제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좌파에서 찬성여론이 많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속도조절'이냐 '전면확대'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공정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대학들은 입학사정관 선발인원을 올해(2010학년도) 입시에서 대폭 늘렸다. 지난해 40개대 4555명에 비해 454% 증가했다. 하지만 전형을 이끌어갈 입학사정관은 올해 채용 예정인원 157명을 감안해도 360명에 불과하다. 연세대는 입학사정관전형 선발인원을 지난해 571명에서 올해 1377명으로 크게 늘렸지만 입학사정관 숫자는 기존 3명에서 고작 3명 더 채우는 것으로 교과부는 파악하고 있다. 입학사정관 1명이 229.5명의 합격자를 골라내야 한다는 의미다. 대입 경쟁률을 감안하면 입학사정관 1인이 수백 명의 학생에 대해 창의성과 논리력,교내 활동 등을 점검하고 잠재력을 판별해야 한다. 교과부가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으로 지정한 연세대가 아직 이런 수준이다.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확보예정인 입학사정관이 4~15명에 불과한 대학이 많다. 그나마 이들 중 상당수는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다. 이들이 전국 고교를 방문해 교육과정을 점검하며 전문성을 발휘해 창의적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을까.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입학사정관제가 '고교등급제'나 '기여입학제'의 '합법적 통로'로 변질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는 35명의 전문적인 입학사정관이 1년 내내 전국의 고교를 방문하고 학생을 면담하는 방법으로 100%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버드대를 당장 따라가기는 어렵다. 시간도 걸릴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련된 교육계의 한목소리가 입학사정관제의 안착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태웅 사회부 차장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