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오너 동반 퇴진] "최악 상황만은 막자" 그룹 살리기 '충격 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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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지분경쟁이 불씨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그룹 경영에서 함께 손을 떼기로 하는 '충격요법'을 선택했다.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방증이다. 금호가(家)의 이상기류는 지난달부터 조금씩 감지됐다. 박찬구 회장 측이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그룹 경영을 놓고 형제간 갈등이 생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불거져 나왔다.
박삼구 회장도 이날 동생인 박찬구 회장과 그룹 경영에 관해 이견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박 회장은 "경영은 일사불란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화학 회장(박찬구) 본인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경영에 반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룹 경영에 문제가 야기됐다"고 설명했다.
◆대우건설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에 이어 2007년엔 대한통운까지 인수하며 사세를 급격히 키웠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반적인 영업상황이 악화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대우건설을 매입하면서 채권자들과 약속한 '풋백옵션'이 발목을 잡았다. 금호는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3조5000억원을 빌리는 대신 올해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올 들어 대우건설 주가는 1만원대로 추락했고 풋백옵션으로 인한 자금부담이 경영 전반에 걸림돌로 불거졌다. 금호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금호생명과 서울고속터미널 등을 시장에 내놨고 사회간접자본 주식 등도 팔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적당한 주인을 찾지 못해 매각 작업이 지연됐고 결국엔 대우건설마저 매물로 던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 규모만 1조원을 넘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제안대로 대우건설을 내놓더라도 계열사에 엄청난 투자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형제간 지분매입 경쟁
대우건설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는 그룹 내 이견이 갈리는 촉매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 매입과정을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불거진 것.급기야 지난달부터 박찬구 회장 측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면서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호그룹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기업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두 곳이었다.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2남 3남 4남 일가 지분은 똑같이 유지됐다. 황금분할을 통해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최근 이 황금비율이 깨지기 시작했다. 4남 박찬구 회장 측이 금호산업 지분 6.11%를 모두 팔고 대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8.02%까지 늘렸다. 이후 차남 측 박철완 부장과 3남 측 박삼구 회장 부자가 이달 2일부터 7일까지 똑같은 양의 지분을 사들였고 그 결과 박철완 부장과 박삼구 회장 부자의 지분율은 각각 11.76%,11.77%로 높아졌다. 이처럼 박찬구 회장 측이 갑작스레 지분을 늘리자 일각에선 계열분리에 대한 관측이 불거졌다. 대우건설 인수에 반대했던 박찬구 회장이 재매각을 계기로 박삼구 회장과 딴 길을 가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이에 대해 그룹 측은 즉각 반박했다. 대우건설 매각으로 지주회사 지위를 잃게 되는 금호산업을 대신해 금호석유화학 단일체제로 가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 등 그룹의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돌파구를 찾은 건 다행"이라면서도 "금호가 3세들이 경영 전반에 부각될 시점에는 그룹 경영권에 대한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