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성지는 기도의 힘을 체험하는 장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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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신부 이탈리아 성지순례기"성지는 단순히 거룩함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거나 웅장한 옛 건물과 성전을 장식한 미술품을 감상하는 관광지가 아니다. 성지는 하느님의 감각을 잃고 기도를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늘과 맞닿은 곳,즉 기도의 힘을 체험하게 해주는 특별한 장소다. "
"땅위에는 하늘을 담은…" 출간
서울 한남동성당 김형찬 주임신부(45)는 최근 내놓은 이탈리아 성지순례기 《땅 위에는 하늘을 담은 곳이 있다》(주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지순례와 관광의 차이는 바로 거룩한 장소를 찾아 나서는 자세라는 얘기다. 김 신부는 이 책에서 지난해 신자 30여명과 함께 이탈리아의 옛 성당과 수도원을 열흘 동안 돌아보면서 성인 · 성녀들의 삶을 묵상하고 그들과 마음 속으로 대화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례단은 베네딕토수도회의 출발지인 몬테카시노를 시작으로 성 비오 신부의 숨결이 살아있는 피에트렐치나와 산 조반니 로톤도,프란치스코 성인의 아시시와 라베르나를 거쳐 가타리나 성녀의 시에나,성체기적의 현장인 볼세나와 오르비에토,베네딕토 성인의 은수처(隱修處)였던 수비아코,로마 등을 순례하며 미사를 올리고 기도했다.
특히 김 신부는 성인들의 삶에 자신의 사목생활을 비춰보면서 사제로서의 자세를 다잡는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짧은 문장을 통해 기도와 노동의 건전한 균형을 중시했던 베네딕도 성인을 만나고,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닮았던 성인으로 꼽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새들에게 설교하고 늑대를 길들였다는 전설도 들려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입은 다섯 상처(오상 · 五傷)를 그대로 받았던 성 비오 신부가 선종할 때까지 50년간 있었던 산 조반니 로톤도의 성당에서 직접 미사를 봉헌하며 비오 신부가 생전에 사용하던 장갑과 십자가를 들고 신자들에게 강복(降福)했던 경험은 이번 순례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한다. 묵었던 호텔 앞에서 동행한 수녀와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자 신자 한 사람이 '두 분이 호텔 앞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으면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말리더라는 이야기 등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천주교 성인들의 삶과 가르침,수도원의 전통과 문화,천주교 전례의 의미와 여러 가지 기도문 등은 물론 순례지의 미사 시간과 순례 시간,홈페이지,전화번호,호텔 정보 등도 상세하게 담고 있어 일반 여행 안내서로도 훌륭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