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슬픈 미인대회'

캄보디아에서 약 20년동안 계속된 내전은 수백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유엔(UN)의 개입으로 지난 1990년대 초 내전이 종식된 이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희생자는 속출했다.

내전 당시 매설된 600만개에 달하는 지뢰는 지난 20년동안 수많은 캄보디아인들의 목숨과 신체 일부분,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앗아갔다.노르웨이 출신의 한 젊은 예술가는 지뢰로 인해 불구가 된 이들의 남은 생에 주목했다. 지뢰로 인한 참상을 일깨워야 한다는 생각에 '지뢰 미인 선발대회(landmine beauty contest)'를 추진했다. "살아남은 희생자들 개개인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싶다"는 의도였다.

역시 내전 중 매설된 지뢰로 피해를 입었던 앙골라에서 지난 2008년 성황리에 개최된 이 '슬픈 미인대회' 2회 째는 올해 캄보디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캄보디아 정부는 이를 허가해주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 BBC방송 등이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정부는 오는 7일 수도 프놈펜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회 '지뢰 미인 선발대회'가 지체 부자유자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판단했다.키우 카나리드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은 이 대회를 가리켜 "캄보디아 지뢰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처사"라며 "정부는 이 행사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불허 의사를 밝혔다.

이에 행사 주최 측은 지난 2일 홈페이지를 통해 "캄보디아의 정치적 상황과 정부의 금지 발표로 인해 오늘을 기해 해당 국가에서의 대회 추진을 중지한다"며 "다만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는 계획대로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까지 계속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전자 투표를 통해 선발된 21명의 후보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 18∼48세 사이의 이들 참가자들은 모두 지뢰를 밟아 다리 등 신체 일부분을 잃거나 부상을 입은 지체 부자유자들이다.행사를 기획한 노르웨이 출신 아티스트 모르텐 트라비크는 "정부의 지원 중단과 대회 취소로 인해 참가자들이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것"이라며 "이번 대회는 어디까지나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의 투표 결과는 새해 전날인 12월 31일 인터넷 홈페이지(miss-landmine.org)를 통해 공개된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