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상처뿐인 타결'] "모두 죽자는 거냐"‥노조원 반발·이탈에 사실상 '白旗'

노조 막판까지 떼쓰다 수용‥"무엇을 위한 점거였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의 불법 공장점거 사태가 6일 극적인 노사합의로 막을 내렸다. 파국을 피하고 교섭을 통해 사태를 마무리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노조의 무리한 요구로 시작된 농성이 77일 동안 계속되면서 회사와 지역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러다보니 극적 합의에도 선뜻 박수를 보낼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노조는 무리한 떼쓰기를 계속하다 막판에 몰리자 농성을 풀어 '과연 무엇을 위한 점거였나'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

◆노조,막판까지 위험한 도박한상균 노조 지부장은 지난달 말 무박 4일간 '끝장 교섭'에 나설 때도 "원칙적으로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다 스스로 제안했던 협상을 결렬시켰다. 한 지부장이 박영태 법정관리인에게 다시 전화를 건 시점은 6일 오전 9시40분.그는 "의미있는 입장 변화를 보이겠다"며 대화를 제안했고,1시간18분 만에 정리해고안에 서명했다.

노조의 변화 조짐은 지난 5일 밤부터 시작됐다. 3일 17명,4일 20명이던 이탈자 규모가 경찰의 '최후통첩'이 있던 5일 이후 111명으로 불어났다. 농성자 수는 400여명으로 급감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6일 새벽까지 도장2공장 내에서 노조 집행부 및 전체 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농성장에서 빠져나온 한 노조원은 "이탈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지도부도 더 이상 강경파에만 끌려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하루 세끼 나오던 주먹밥 지급 횟수가 줄어 체력이 고갈된 데다 경찰의 진압 시점도 다가오고 있어 농성자 대부분이 두려워 했다"고 전했다. 이러다보니 노조도 사실상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이다. 노조가 강경 일변도의 투쟁 끝에 사측과 막판 타협했다는 사실은 노사 문화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불법 행위를 벌이고서도 적당히 양보하면 상당 부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서다. ◆사측은 너무 많은 양보

쌍용차는 구조조정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노조에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사측은 삼일회계법인의 실사결과를 토대로 정리해고자 974명 중 40%를 무급휴직이나 영업직전환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최종안'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무급휴직자를 늘리면서 4대 보험료와 퇴직금 부담을 추가로 떠안게 됐다. 앞으로 재고용 압박도 가중되게 됐다. 이에 대해 일반 직원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한 직원은 "무급휴직 대상자를 늘리고 휴직기간도 당초보다 짧게 한 것에 대해 직원들이 흥분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7일 경영진에 따지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투쟁력'을 입증한 강성 노조를 계속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경영상 커다란 부담이다. 휴직자들은 '퇴직' 상태가 아니어서,어떤 식으로든 노조활동을 계속할 수 있어서다. 기존 희망퇴직자들에 대한 형평성도 문제다. ◆정부 '불개입 원칙' 통했다

'노사 문제는 개별 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정부의 원칙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노조 및 일부 정치권,외부세력 등이 정부 중재 및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부품업체 및 지역경제 지원방안을 강구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제품군이 짜여진 쌍용차의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며 "생산 중단 사태가 계속되면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노조를 압박했다. 산업은행 역시 자금 지원을 미루면서 "노사가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법원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보조를 맞췄다. 정부의 '개입불가' 원칙이 결국 쌍용차 노사가 협상에 나서도록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두산중공업이나 이랜드 등의 파업 때 정부가 나서 노조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사태가 꼬였었다"며 "정부가 개별 기업 노사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 앞으로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이상열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