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좀비에 맞서며 로맨스를? 제인 오스틴은 어떤 표정 지을까

오만과 편견,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해냄/ 408쪽/ 1만2800원
《오만과 편견,그리고 좀비》는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에 '좀비'라는 장르적 상상을 버무린 소설이다.

상대에 대한 오해 탓에 줄기차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커플의 지난한 연애는 원작 그대로지만,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소설적 배경은 좀비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습격하는 영국. 베넷 가(家)의 가장이 "요즘같이 흉흉한 영국에서 내 딸 다섯이 모두 무사히 살아남는 걸 본다면 더 바랄 게 없겠소"라고 한탄할 정도다. 결혼적령기를 맞은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무술에 능한 매력적인 여성이다. 다아시와 친해진 그녀는 "내 마음을 끌 만큼 예쁘지는 않아"라는 그의 폭언을 듣고는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그러다 '여성스러우면서도 놀랄 만큼 근육이 발달한' 엘리자베스의 팔과 용맹한 모습에 반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다아시가 언니의 사랑을 훼방놓았다는 오해까지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무시무시한 발차기와 무술로 응대한다. 좀비를 가볍게 물리치는 실력자다운 거절방법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대체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고전적인 밀어는 온데간데없고 험악한 상황에 걸맞은 표현을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이 압권이다. 두 사람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 밀어는 바로 "나의 총알은 모두 당신 겁니다,베넷 양"이었다. 하긴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좀비를 물리칠 수 있는 수단을 통째로 양보한다는 것만큼 깊은 애정 표현도 드물 듯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