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꽃시장에 가면…

한 곳에 오래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묵은 짐,새로운 짐들이 섞여 생활공간이 좁아진다. 그래서 주거 환경을 바꾸며 짐 정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오래 되었는데,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짐 정리와 새로운 배치가 마음에 쏙 들기까지는 대략 2~3개월 걸린다. 내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공간 활용을 해보고 비로소 '응! 동선이 편안하네'란 생각이 들면 한동안 불평 없이 잘 지내게 되는 것.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피부 알레르기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피곤한 날이면 어김없이….이게 무슨 일이람.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피부가 좀 약하긴 해도 이런 트러블은 없었는데.좀 쉬고나면 괜찮아지겠지.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야.그런데 이런이런,그렇지가 않네….원인을 찾아야 했다. 음식 때문인지,다른 무엇이 있는지.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라진 건 주거환경밖에 없었다. 나만의 공간은 하루종일 차 소리를 들어야 하는 도심 한복판인 데다 땅과는 거리가 먼 고층이어서 맑은 공기도 부족할 것 같고….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잎사귀가 풍부한 나무가 없으면 이런 현상은 계속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피로로 면역성이 떨어질 때면 더욱 심해지는 알레르기.빨리 해결하자!

꽃시장에 가면 해결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에도 가끔 한가로운 휴일에 들러 구경하고 소소한 소품들을 사오기도 했던,갈 때마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편안함과 상쾌함을 느꼈던 꽃시장으로 달려갔다.

우선 잎사귀가 크고 탐스러운 나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집 분위기와 또 얘네들끼리도 잘 어우러져야 하고,화분 색깔도 맞춰야 하고,값도 따져야 하고….고려해야 할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며 여기엔 요즘 인기있는 해피트리를 놓고,저기엔 뱅갈 고무나무를,또 전자파가 많이 나오는 곳 주변에는 선인장류를,책상이 있는 조용한 공간에는 아담한 팔손이를,냉장고 옆에는 홍콩이와 파비안 등을 배치하기로 했다. 조금 과장해서 집 크기보다 나무가 더 많다고 느낄 만큼 여러 종류의 나무를 사다 보니 한 달 용돈을 다 써버렸다. 캬…!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나무들을 들여놓으니 살짝 식물원 같은 분위기로 공간이 바뀌었고,내게 고통을 주러 찾아왔던 알레르기들도 스르르 사라졌다. 역시 자연의 힘은 크고 신비롭다. 인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평생 가까이 하며 살아야 하는 자연.무더위에 지쳐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나를 지켜주는 사랑스런 나무들….때 맞춰 물주고,외출 후에는 너무 더워 마르지 않았는지 보살피는 등 애정을 듬뿍 담아 예뻐하고 있다. 내겐 너무 고마운 나무들이니까.

오미란 한국모델협회부회장 i16ke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