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책마을 편지] 시공을 초월한 영웅의 조건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역은 소수의 영웅일까요,아니면 대다수의 민중일까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의 견해는 '영웅'입니다. 그는 최근 번역된 《영웅들의 세계사》(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한 시대를 이끈 영웅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꼽은 영웅은 권력을 움켜쥐고 천하를 호령한 정치인이나 제왕,전쟁의 신들만이 아니군요. 그 기준은 '오랜 세월 널리,꾸준히 그 존재가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잘났거나 못났거나 관계없이 강렬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끈 사람,대중의 열렬한 사랑이나 엄청난 미움을 받았던 사람,어떤 식으로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죠.특히 헨리 5세와 잔다르크를 하나의 렌즈로 비춘 대목이 그렇군요. 전쟁과 빚더미 속에서 왕세자 시절을 보낸 헨리 5세는 잉글랜드 왕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했고 정부와 의회,법원에서도 영어로 문서를 쓰도록 했지요. 나중엔 프랑스를 점령하고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프랑스 왕위계승권도 받아냈습니다.

그의 아들 헨리 6세가 프랑스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때 샤를 6세의 아들에게 왕좌를 찾아준 것은 잔다르크였습니다. 시골 소녀인 잔다르크는 '신의 부름'을 받아 잉글랜드군과 싸웠고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끌었죠.그러나 샤를 7세의 외면 속에 재판을 받고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습니다. 저자는 두 사람 다 높게 평가합니다. 헨리 5세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였고 잔다르크는 운명을 개척했다는 거죠.

그는 또 결점이 많더라도 인간미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인물들을 영웅으로 꼽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은 '갑자기 무모하고 기가 막힐 정도로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성향'을 지녔지만 '한번 내린 결정을 뒤집는 일이 없는 무서운 인물'인 엘리자베스 1세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았군요. '난간에 서 있는 돌사자의 마음까지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을 내뿜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영웅을 알아보는 법'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절대적인 독립심을 갖추고 결의에 찬 행동을 보여주며 결과에 관계없이 용기를 발휘하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합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