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징크스를 깨다

살면서 소소한 일들은 서슴없이 얘기해 왔지만,그러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이유는 나에게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크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진행이 되고 난 이후거나 안전하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하지 못했던 것.

아마도 그것은 1992년부터 생기지 않았나 싶다. 그때 내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었다. 당시 간간이 잡지 촬영을 하며 알게 된 꽤 크고 인기 있었던 헤어숍 오너인 지인이 숫기 없고 순진하기만 한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봤는지 "SBS에서 이런 것을 하는데 프로필 좀 써줘봐. 다른 애들 거와 같이 신청해줄 게"했다. "앗! 그런 큰 대회를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 일단 1차 서류심사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했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었단다. 몹시도 조심스러웠고 떨어지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소심한 생각에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도 못했는데 합격이라는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나의 조용한 준비라는 징크스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패션모델이라고 써냈고,그 시절부터 공부 외의 혼자 있는 시간에는 모델과 방송에 관련된 궁금증을 풀고 따라해 보는 일들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러다 보니 평소 걸음걸이도 남들과 달랐던 모양이다. 친구들로부터 "너는 모델처럼 걷는다"는 소리도 자주 듣곤 했다.

제1회 슈퍼모델 선발대회.글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고난의 합숙생활,촬영등을 거쳐 본선까지 가게 되었고 방송을 통해 대회가 전국에 보도됐다. 가족들도 친지들도 방송을 보고나서 '나'라는 것을 알고는 축하의 말보다는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대회에 나가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나의 성년은 그렇게 큰 행운으로 시작되었기에,그간 수많은 일들을 하면서 더 많이 말조심을 해야 했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입이 근질거려도 참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좋은 결과를 얻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들 알게 될 테니까. 생각이 이렇게 고정돼 있어서인지 결과도 그에 따랐다. 예를 들어 중요한 계약 건이 있는데 90%로 확정이 되어 이젠 얘기해도 되겠다 싶어 밖으로 이야기를 해버리면 어김없이 계약이 깨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징크스를 모르는 이들은 "내숭이야,뭘 그리 숨기니.나한테는 말해줘도 되잖아"하며 투정을 부리고 섭섭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징크스를 그만 놓고 싶어졌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오히려 "말이 씨가 되도록 하자"고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이제는 물어오면 "모르겠어,글쎄"가 아닌 있는 그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얘기한다. 잘 될 거라고 믿기만 한다면 될 일은 어떻게든 이루어지게 마련이니까.

오미란 한국모델협회 부회장 i16ke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