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절미 구이로 1000년…日 '기업가 정신'

일본의 상도
홍하상 지음|창해|303쪽|1만8000원
오늘도 신주쿠 거리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물결로 활력이 넘쳐난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쩍 커버린 일본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느니 '모방의 천재'라느니 하면서 섬나라 일본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30여년 동안 일본 · 일본인을 지켜본 나로서는 '일본인의 상업정신'에 가끔 놀라곤 한다.

그러던 차에 SERI CEO에서 '일본인의 상인 열전'을 강의해오던 홍하상씨의 《일본의 상도》를 접하고는 오랜 궁금증을 한번에 해결한 듯한 감동을 느꼈다. 흔히 일본을 대표하는 5대 상인으로 오사카,교토,오미,나고야,도쿄 상인을 일컫는다. 이들 5대 상인의 역사는 많게는 1500년에서 적게는 100여년에 이르는 다양한 상업의 궤적을 엮어왔다. 이들은 역사 · 문화적 배경에 따른 제각각의 상도(商道)를 형성해 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걸쳐 정책적으로 육성된 상인이 오사카 상인이라면,천년간 일본의 수도라는 자부심과 역사적 전통으로 상도를 이룬 것이 교토 상인이다. 모기장 행상으로 시작해 일본 전역과 세계를 누비며 합자,회계,마케팅,유통에서 뛰어난 상재(商材)를 보여주는 상인이 오미 상인이라면,질 좋은 목재 생산지로 일찍이 기계와 공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주인공이 나고야 상인이다.

저자는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일본의 5대 상인을 일일이 발품을 팔며 취재해 그들의 속살까지 샅샅이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현장 탐사 정신이 빛나는 것은 기업가들과의 인터뷰다. "서기 578년 창업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인 곤고구미의 사장은 80대 고령에도 공사 현장에서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오르내린다"는 구절이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게 문을 여는 노포 상인의 몸에 밴 성실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과연 무엇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는지'를 진하게 깨닫곤 했다.

최근 일본의 도쿄상공리서치는 창업 100년을 넘는 기업이 일본 전역에 2만 1066사이며,창업 1000년이 넘는 기업도 8개나 된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불황과 경제난국을 타개하면서 일본 경제의 근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의 기업들은 경영 위기에 처할 때마다 회사가 종업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믿음과 희망을 주고 각고의 노력으로 기술혁신과 아이디어 쇄신을 통해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도 일본의 저력은 바로 이 기업가 정신,상인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절미 구이 회사를 1000년 동안 이어오고,우동집 하나로 100년이 넘는 노하우를 가족에게 전수하는 나라.자신의 일에 신념을 갖고 목을 던지는 직장인의 윤리를 갖고 있는 나라.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돼 온 일본의 저력은 바로 이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문가 정신과 원리원칙에 충실한 기업가 정신에 있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무기력에 빠진 대한민국이 오늘 《일본의 상도》를 만나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일본이 어떻게 불황을 극복했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를 되짚어보는 일.이 책이 모범답안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유재순 JPNew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