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워치] '고이즈미 칠드런' 몰락…숨죽였던 오자와派 부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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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총선 관전 포인트
'300석(민주당) 대 100석(자민당)'
오는 30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총선)를 일주일 앞두고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언론이 분석한 판세다. 총 480석을 놓고 다투는 이번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제1야당인 민주당은 과반(241석)을 훨씬 넘는 3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00석을 갖고 있는 집권 자민당은 3분의 1인 100석 정도를 건지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로 정권이 바뀌면 일본에선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반세기 만에 사실상 첫 정권 교체가 된다. 자민당은 1993년 총선에서 제1당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일본신당 공명당 등 8개 야당 연합에 정권을 잠시 내 준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야당 연합의 붕괴로 10개월 만에 정권을 다시 찾아왔다. 일본으로선 역사적 선거인 만큼 화젯거리도 많다. 3대 관전 포인트를 정리한다.
◆오자와와 고이즈미의 희비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 공천한 후보자는 총 330명.이 가운데 전 · 현직 의원이 166명이고 나머지 164명은 정치 신인이다. 민주당이 300석 이상을 차지할 경우 전 · 현직 의원이 모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34명 이상의 초선 의원이 탄생한다.
주목되는 건 이들 정치 신인 대부분이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가 발탁한 인물들이란 점.오자와 전 대표는 올초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대표에선 물러났지만 선거 담당 대표대행을 맡아 공천을 주도했다. 비례대표 후보로 상위 순위에 오른 야마자키 마야 간호협회 상무나 쓰쿠가케 데쓰오 전 국가공안위원장 등은 모두 오자와가 직접 영입한 사람들이다. 민주당에선 비례대표 명부를 '오자와 리스트'라고도 부른다. 이들이 당선되면 오자와 계파로 분류될 게 분명하다. 소위 '오자와 칠드런(Children)'이 탄생하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선 벌써부터 총선에서 승리하면 오자와의 영향력이 하토야마 대표를 압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면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발탁해 당선된 '고이즈미 칠드런'들은 재선 여부가 극히 불투명하다. 2005년 우정 민영화에 반발,자민당을 탈당한 의원들을 겨냥해 내려 보낸 자객 등 83명이 초선으로 당선돼 '고이즈미 칠드런' 그룹을 형성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난해 정계 은퇴를 선언한 데다 최근 국민적 인기마저 떨어져 이들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지난달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시장 선거에선 고이즈미 전 총리가 밀었던 현직 시장이 시의원 출신 33세 무소속 후보에게 패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고이즈미 칠드런' 중 살아남을 의원은 10명도 채 안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 거물 vs 미녀자객 대결2005년 '우정 민영화 선거'로 불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눈길을 끌었던 게 소위 '자객 공천'이었다.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우정 민영화 정책에 반발해 탈당 출마한 의원들의 지역구에 미모의 여성 신인들을 전략 공천한 것.이들의 돌풍은 고이즈미 자민당에 대승을 안겨 줬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거꾸로 야당인 민주당이 자민당의 거물들을 집중 겨냥한 자객 공천을 벌였다.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오자와 전 대표의 작품인 건 물론이다. 대표적인 곳이 자민당의 킹 메이커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72)의 지역구인 이시카와현의 이시카와2구.민주당은 이곳에 중의원 비서 출신 새내기인 다나카 미에코씨(33)를 공천했다. 13선의 모리 전 총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지역구를 누비지만 막내딸 뻘인 다나카씨의 추격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73 · 6선)의 지역구인 군마현의 군마4구엔 민주당에서 후지TV 기자 출신 미야케 유키코씨(44)를 내보냈다. 미야케 후보는 "후쿠다 전 총리가 총리직을 내팽개쳐서 일본을 망신시켰다"며 공격하고 있다. 공동 여당인 공명당의 오타 아키히로 대표(63 · 5선)에겐 민주당의 아오키 아이(43) 참의원 의원이 대항마로 나섰다. 2005년 선거 때 대표적 '자객'이었던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57 · 5선)은 에바타 다카코 전 도쿄대 특임교수(여 · 49)를 '역자객'으로 만났다. 이들 민주당 미녀 자객의 활약을 일본 국민들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할아버지 이은 손자들의 승부
이번 선거전을 진두 지휘하는 자민당 아소 다로 총리와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의 조부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는 사실은 8 · 30 총선의 또 다른 볼거리다. 아소 총리의 외조부인 요시다 시게루와 하토야마 대표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모두 2차대전 직후 일본을 좌지우지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1946년 하토야마가 총재였던 자유당은 총선 승리로 제1당이 됐지만,그는 반미 이력을 문제삼은 미 군정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돼 총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게 요시다다. 요시다는 "공직 추방에서 해제되면 총리직을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하토야마는 1954년 자유당 내 요시다 반대 세력을 규합해 민주당을 결성하고 그 해 말 총리가 됐다. 다음 해엔 보수 연합으로 자민당을 창당해 초대 총재에 오르고 총리도 맡았다. 하지만 요시다는 자민당 창당에 합류를 거부하는 등 하토야마와 끝내 화해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손자가 여야로 갈려 차기 정권을 걸고 운명적인 승부를 벌이고 있다. 세습 정치가 강한 일본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장면이다. 8 · 30 총선 입후보자 1252명 중에서도 부모 등이 의원이었던 세습 후보는 최소 171명으로 출마자의 10%를 넘는다. 정당별로는 자민당이 67%인 114명,민주당은 34명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