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DJ '마지막 일기' 공개…"파란만장한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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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점 있으나 후회는 없다"김대중 전 대통령 일기장의 일부 내용이 21일 공개됐다. 이 일기는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발견해 비서진을 통해 공개한 것으로 2008년치와 2009년 1월1일~6월4일의 두 권 분량이다. 김 전 대통령 측은 100일간의 일기 중 공개할 내용을 발췌해 사진과 함께 책자로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생과 생활 예찬,정치와 북한 핵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적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대해선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주요 일기내용
◆2009년 1월1일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명.10시간 동안 세배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1월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1월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1월11일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1월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 그것을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1월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주지 못한 사람들.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4월27일
투석치료.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크게 감사.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중소서민 경제위기,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5월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5월20일
걷기가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감사하고 보람있는 생애다.
◆5월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부인,아들,딸,형,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5월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시리아,러시아,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5월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6월2일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정리=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