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희정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얼리어답터' 정치인에서 최초의 30대 기관장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서문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1995년 신한국당에 입당했다.이른바 '당료'생활을 하면서 박사 과정을 밟고 의회발전연구소 활동도 했다.

2002년엔 같은 학교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신한국당,한나라당의 10년 경험을 발판으로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부산 연제에서 당선됐다. 그는 어릴 적 꿈이었던 정치인이 되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나름의 '전략'을 짰다고 한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의회의 경우 정치 신인을 충원할 때 당료 출신들을 우대하는 흐름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도 국회를 부지런히 드나들었고 당원 활동에도 열성을 보였다.

이런 경력을 보면 김 원장은 영락 없는'정치인'이다. 때문에 처음 그가 한국인터넷진흥원장으로 선임됐을 때 주변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국회에서 그가 일했던 과정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김 원장은 2004년 이후 계속해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으로 일해 왔다. 4년 연속 우수 국회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디지털 국회자문위원을 하면서 전자투표 시스템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고,당직자 시절에는 사이버 담당 부대변인을 하면서 첫 사이버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초창기인 2002년 10월에 만들 정도로 '얼리 어답터(IT를 남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향을 갖고 있다. 개인 블로그도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김 원장은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06년 이후 모교인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는 부산대 산학협력과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2005년 LG전자에서 일하는 권기석 부장과 결혼,지난 6월 첫 딸을 순산했다. 인터뷰 사진을 찍으면서 "아직 붓기가 다 안 빠졌는데…"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조일훈/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