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변화무쌍한 한지 색깔ㆍ모양 우리 삶과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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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청 한지그림 동호회
"찢고 오리고 붙이다 보면 생활 에너지 충전되죠"
푸르른 수목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구청 한지그림동호회 강의실.매주 수요일 오후 7시면 한손에 미술재료를 잔뜩 든 채 한지그림동호회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바쁜 저녁시간에 짬을 내느라 힘은 들지만 65세의 나이가 무색하도록 단아하고 열정적인 권영순 동국대 교수의 지도 아래 한지가 주는 에너지를 충전받고 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박경림의 노래 가사처럼 "나에게 빠져 빠져 모두 빠져버려♬ 피할 수 없는 나의 매력 속으로~" 아름다운 한지를 찢고 오리고 붙이고 늘리면서 사군자 그림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경이로운 한지그림의 매력에 푹~ 빠졌는지 모른다. 한지그림은 뜯거나 찢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에 속한다. 한지를 어디에 어떤 기법으로 붙이느냐에 따라 창의력과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산할 수 있다. 마치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어 고개를 빼곡히 빼고 그림에 눈을 가까이 붙이며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아마 아름다움,따스함,끈질김과 이에 유연함까지 더해진 한지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지그림을 하면서 느끼는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한지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한지는 색종이처럼 모양과 색깔이 동일하지 않다. 같은 모습의 사람이 없듯 매번 만들어지는 한지의 색깔과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한 작품 한 작품이 유일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같은 작품을 보고 따라 하지만 같은 작품이 단 하나도 탄생한 적이 없다. 재료인 한지는 동일하지만 저마다 작품이 다른 까닭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추상화해 그림에 투영해서일 것이다.
처음 한지그림 수업을 시작했을 때 일률적으로 포도송이를 규칙적으로 붙였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포도알마다 크기와 색깔,그리고 농도와 맛이 다 다를 텐데 그저 다 같은 포도알맹이가 달려 있는 것처럼 다닥다닥 많이 붙였다가 권 교수님이 다듬어주신 경험이 생각난다. 덜익은 포도송이,큰 포도송이,작은 포도송이가 각각 어우러져 포도송이에 매달려 있듯 우리의 인생 또한 다양한 사람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포도송이에 투영시키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해 가면서 우리는 지난 6월 강남구민회관 1층 전시실에서 특별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조영자 과장님의 퇴직을 앞두고 평생을 몸담고 있는 공직생활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퇴직전 '아름다운 삶,아름다운 인생'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 시대의 일하는 여성이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하는 여성의 삶은 아름답기보다는 거의 투쟁에 가깝다. 하지만 이 전시회에는 그런 엄마의 미안함도,아이의 섭섭함도,남편의 핀잔도 더 이상 없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엄마에 대한 자랑스러움,아내에 대한 배려만이 있었다. 이 전시회는 더 이상 단순한 그림이 아닌,다시 하나 된 가정과 회복한 자신감이 전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더욱 빛이 났다. 늦은 시간까지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배는 후배에게 꿈의 그림을 남기고 후배는 선배에게 축하의 그림을 선물했다.
오늘도 우리는 아름다운 한지에 생명을 불어 넣으며 언젠가 멋진 한지그림 화가로서 자리매김할 꿈에 늦은 밤 화실의 불을 켜놓고 있다. 또 다른 전시회의 감동을 위해,또 하나의 자신감 회복을 위해,그리고 또 다른 나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며 오늘도 한지로 자신의 삶을 꼬박꼬박 붙여 나간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한지그림동호회의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김학숙 한지그림동호회 부회장(사회복지과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