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사업, 세입자 이주비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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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法 "시행인가 고시일 기준해야"재개발구역 내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는 기준일은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이란 항소심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서울시내 재개발조합들은 최대 수십억원의 주거이전비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조합들은 그동안 재개발구역 지정 공고공람일 이전부터 거주해온 세입자에게만 주거이전비를 지급해왔다.
조합 "보상 노린 이주 속수무책"
확정땐 최대 수십억원 추가 부담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판사 서기석)는 정모씨(41) 등이 월곡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주거이전비 등 청구 소송에서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을 기준으로 주거이전비를 지급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다시 말해 사업시행인가 고시일 3개월 전부터 거주해온 세입자는 주거이전비 지급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서울고법이 주거이전비 기준일에 대해 내린 첫 판결이며 현재 서울고법에는 비슷한 유형의 소송이 10여건 계류 중이다. 재판부는 "특정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 · 고시될 때에는 주거이전비 지급 청구 상대방인 조합이 설립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도모하고 조기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사업인정 고시일을 이주비 지급 기준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2부와 3부는 지난해 10월 이후 비슷한 유형의 소송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려왔다. 2부는 재개발사업 말기인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을 기준일로 봤지만,3부는 사업초기인 구역지정 공람 공고일을 기준일로 판단했다. 구역 지정 공람공고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후 세입자들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돼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2부의 판단이다. 반면 3부는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구역 지정 후 보상을 노리고 이주해오는 악의적 세입자를 막기 어렵다고 봤다.
향후 대법원이 고법과 같은 판단을 할 경우 재개발조합들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주거이전비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구역지정 공람공고일과 사업시행인가 고시일 사이에 고시원이나 여관 등으로 새로 이사해 온 세입자들에게도 주거이전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4인 가족 기준의 주거이전비는 현재 1300만원 수준으로 100세대가 늘어난다고 가정할 경우 13억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주거환경연합의 김진수 사무총장은 "보상을 노리고 전입해오는 악의적 세입자가 많은 곳에선 세입자 주거이전비가 수십억원 증가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국토해양부가 지난 5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 규칙'을 개정해 지금까지 불분명했던 주거이전비 기준일을 '구역지정 공람공고일'로 명확히 함에 따라 규칙 시행일인 11월28일 이후 구역 지정에 나서는 곳은 이번 판결과는 무관하게 구역지정 공람공고일을 기준으로 주거이전비를 지급하게 된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