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600만명 시대] (中) 경제활동인구 25% '高위험군'

올해만 20만명 '추락'…요건도 모르고 "무조건 빚 탕감해달라"
경기침체 골 깊어지며 상담문의 80% 넘게 증가
신용회복위 창구 북적
#사례1.서울 동대문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던 조모씨(47)는 거래처의 부도로 지난해 말 사업에 실패한 뒤 총 5361만원의 빚을 떠안은 채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됐다. 채무자들의 빚 독촉으로 인한 가정 불화로 이혼까지 하게 된 조씨는 전국의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했으나 건설경기가 나빠지며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16살 된 아들을 동생집에 맡기고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쳤으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조씨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례2.경기도 수원시의 의류업체에 다니던 최모씨(31)는 경기침체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자 지난 2월 구조조정을 당했다. 최씨는 그동안 생활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은행,카드사,캐피털사 등 8개 금융사로부터 16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해 실업급여를 신청했으나 월 87만원의 수령액은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두 달 이상 연체가 되자 최씨는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막막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며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의 늪'에 빠지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올 들어 빚을 탕감받기 위해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찾은 사람은 39만2583명(이하 7월 말 현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만3637명과 비교,75.5% 급증했다. 이 중 워크아웃을 신청한 사람은 6만5290명으로 56.2%가 늘었다. 신복위는 현재 추세라면 올 연말에는 개인 워크아웃 신청자가 10만명을 넘어서고 상담자 수는 7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빚을 갚을 능력이 아예 없어 올 들어 법원에 파산이나 개인 회생을 신청한 사람은 각각 6만6440명과 3만4916명으로 둘을 합쳐 10만명이 넘는다. 올 한 해에만 줄잡아 20만명 이상이 정상적으로 빚을 갚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전산망에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217만명과 2002년 이후 신복위에서 개인 워크아웃 상담을 받은 305만명,2006년 이후 법원에 파산과 회생을 신청한 65만명 등 '신용불량 고위험군(群)'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만 줄잡아 6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2500만명 가운데 4명 중 1명꼴로 정상적인 금융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빚 깎아달라"…북적이는 상담창구

사채시장 1번지인 서울 명동에 위치한 신복위 상담창구는 올 들어 빚을 탕감받으려는 사람들로 하루종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안내데스크에 상담신청서를 접수한 뒤 평균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다. 15명의 상담사들이 하루종일 매달려도 상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정규 근무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난 뒤에도 대기자들이 남아 있다. 저녁 8시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복위의 김상길 선임조사역은 "지난해에 비해 하루 평균 상담 문의가 80% 이상 증가했다"며 "한 달 평균 상담자 수만 봐도 지난해에는 3만2000명이었으나 지금은 5만6000명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담사례를 분석하면 가장의 실직 후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소규모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파산상태로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신복위 측은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채무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신복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복위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에는 연체기간이 3개월이 넘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워크아웃과 연체기간이 3개월이 안 된 사람들이 신청하는 프리워크아웃 두 종류가 있다. 신복위 관계자는 "자신이 아직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아닌 줄 알고 신복위를 방문했다가 자신의 연체기간이 3개월이 넘은 것을 알고나서는 부랴부랴 개인워크아웃으로 바꿔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금융채무불이행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용관리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액대출 재원도 바닥 드러내개인워크아웃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소액으로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신복위의 재원도 바닥난 상태다. 신복위는 이들이 빚을 성실히 갚아나가고 사채의 유혹에 빠지지않도록 병원비 등 급전이 필요한 경우 연 2.0~4.0% 이자율로 1인당 500만원 한도 내에서 돈을 빌려주고 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006년 시행 첫 해 연간 5400만원(17건)에 불과했던 대출액이 2007년 34억6900만원(1168건),2008년 137억5100만원(4488건)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올해 7월까지는 전년도 전체 대출액보다 많은 217억8900만원(7290건)이 집행됐다. 신복위의 신중호 홍보팀장은 "병원비 때문에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진단서를 갖고 오게 해 돈이 꼭 필요한 곳에만 쓰일 수 있도록 아끼고 있지만 재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신복위의 대출 재원은 소액서민재단에서 차입한 돈 210억원,은행들이 출자한 돈 140억원,부산시 대전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부한 돈 20억원 등 총 385억원이다. 반면 지난 7월 말 현재 대출 누계액은 390억원을 넘어서 기존 대출자들이 제때 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이다. 신복위는 올해 안에 경상북도,광주시 등과 협약을 맺고 추가로 돈을 조달할 계획이지만 매년 늘어나는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신복위 관계자는 "신규대출이 어려워지면 워크아웃 신청자들이 또 다시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