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권교체 바람'에 전직 총리들도 '촛불신세'

총선 D-2…자민 거물 '미녀자객'에 텃밭서 고전
민주, 물밑서 조각ㆍ예산 편성…정권인수 채비

"이번만큼 힘든 선거는 처음이다. 솔직히 힘이 달린다. "

총 16선으로 일본의 현역 의원 중에선 최장인 49년간 의원을 지낸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78).자민당 후보인 그는 아이치현 지역구에서 의사 출신인 민주당의 오카모토 미쓰노리 후보(38)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이번에 낙선하면 정계를 은퇴할 생각이다. 오는 30일 총선거(중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일본에선 '정권 교체' 바람이 거세지면서 여당인 자민당의 전직 총리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사태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2~25일 여론조사를 통해 판세를 분석한 결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총 480개 중의원 의석 중 과반(241석)을 훨씬 넘는 320석 정도를 휩쓸어 압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것이다. 반면 300석을 갖고 있던 집권 자민당은 100석가량을 건지는 데 그칠 전망이다.

자민당 입장에서 더 심각한 건 전직 총리 등 거물 정치인들이 지역구에서 민주당의 신진 후보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아소 다로 총리 직전에 총리직을 맡았던 후쿠다 야스오(73)는 선친 때부터 지켜온 지역구인 군마현에서 민주당의 후지TV 여기자 출신 미야케 유키코 후보(44)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후쿠다 전 총리는 그동안 선거에서 늘 큰 표차로 이겨왔다. 그는 이번에 비례대표로 중복 출마하지 않아 만약 지역구에서 패배하면 의원 배지를 반납해야 한다.

자민당의 '킹 메이커'로 유명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72)도 이시카와현 지역구에서 민주당의 '미녀 자객' 다나카 미에코 후보(33)에게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다.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비례대표로 중복 출마하긴 했지만 득표 수가 적을 경우 여기서도 떨어질 수 있다. 자민당의 전직 총리가 총선에서 낙선한 건 1963년 이시바시 단잔씨가 유일한 사례였다. 또 자민당 최대 파벌 마치무라파의 수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관방장관,지난달까지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고가 마코토 전 간사장,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소 총리와 겨뤘던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 등 여당의 거물들이 지역구에서 야당 후보들에게 선두를 빼앗긴 상태다. 자민당 관계자는 "지역구에서 낙선한 거물들은 중복 출마한 비례대표로 당선되더라도 힘이 확 빠질 수밖에 없다"며 "거물들이 없는 자민당이 앞으로 야당으로서 어떻게 버텨나갈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 압승이 확실시되는 민주당은 물밑에서 이미 조각과 새로운 조직 설치,예산 편성 등 정권 인수 준비에 착수했다. 민주당은 30일 총선에서 승리하면 다음 날인 31일 곧바로 정권인수팀을 발족시킬 계획이다. 또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의 총리 지명 국회 투표를 9월14~18일 중 끝내고,새 총리가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토록 할 방침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유엔총회 연설이 첫 국제무대 데뷔인 만큼 참모들에게 연설문 작성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또 하토야마 대표가 총리에 지명되는 대로 조각도 서둘러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어 10월 초 임시국회를 소집해 국가전략국 등 새 정부조직 설치,아동수당 지급,정치인의 내각 투입,공무원 급여 삭감 등 핵심 선거공약 이행을 위한 관련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예정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