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무리

대부분의 아들이 좋은 아버지든 나쁜 아버지든,그래서 존경심으로 배우건 욕하면서 배우건 결과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처럼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할 때 적어도 어느 한 대목에서는 언젠가 아버지가 얘기했거나,아니면 그동안 옆에서 보아왔던 아버지의 처세를 떠올리는 아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성인이 되면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기 쉬운데,내 경우에는 한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오히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일 게다. 회사를 찾아오는 아버지의 지인들을 뵐 기회가 종종 있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으신 분들도 계시지만,대부분은 이미 은퇴하신 지 오래이고,그러다 보니 아버지 앞에서 느끼는 긴장감이랄까 그런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계셨는데,아버지는 어떤 분이건 꼭 나를 불러 인사를 드리게 하곤 했다.

찾아온 친구 분에게 '네가 지금 어떤 처지든,어떤 이유에서 찾아왔든 존중하고 귀히 여긴다'는 뜻을 담은 예우 같은 것이었다. 옳지 않지만,업무가 아주 바쁜 날,행색이나 경력으로 보았을 때 아버지 친구 분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격에 맞지 않는 듯한 분 앞에서도 한참을 공손히 앉아 하시는 말씀에 장단을 맞추느라 애쓰다 나오면 아버지가 좀 지나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버지 역시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입장인데도 몇 시간씩 할애하면서 굳이 식사 대접까지 하곤 했다.

한경에세이의 7~8월 필진으로 제안받았을 때 글 쓰는 직업도 아닌 사람이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망설이던 끝에,그동안 사업하면서 느껴왔던 소회들을 두런두런 얘기하듯 적다 보면 두 달치야 메우겠지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예상했던 대로 일주일에 한 편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해외출장이나 행사들과 겹칠 때는 부담스러운 만큼 유혹도 컸다. '한두 편은 우리 회사 홍보팀에 맡길까. ' 바쁜 와중에도 항상 누구를 대하더라도 진심을 다해야 하는 아버지가 지나치다고 불평하면서도 따라 배웠나 보다. 부족한 글일지언정 끝까지 진심을 담은 나의 얘기를 담담하게 쓰고자 생각했다. 한경 독자들은 물론,때로는 회사 식구들에게,때로는 우리 가족들에게 그동안 드러낸 적 없는 내 마음 한 켠을 삐죽이 내밀어 보이는 편지를 쓰는 것처럼.

덕분에 무료한 시간을 잠깐이나마 때울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싶을 이 졸필에 과분하게 반응을 보여주신 한경 독자 몇몇 분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큰 덤이다. 그래도 이번 경험에서 잊지 않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다시는 이런 제안을 겁없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종욱 로얄&컴퍼니(옛로얄TOTO)대표 jwpark@iroy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