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3) '부다페스트의 명동' 바치 거리엔 세입자 찾는 간판만…
입력
수정
동유럽은 아직한 겨울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중심상업지역인 바치 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모양새나 분위기가 매우 흡사해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부다페스트의 명동'으로 통한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달 13일 바치 거리 중앙로에는 핑크 플로이드 등 세계적 음악가들이 참여하는 페스티벌과 팝스타 마돈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헝가리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최근 국채발행에 성공하는 등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헝가리의 상황을 대변하듯 거리에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1부) 격변의 현장을 가다 ③ '마이너스 늪' 벗어난 독일
그렇지만 현장취재를 위해 기자와 동행한 헝가리 산업은행 김선우 부장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헝가리 음악축제는 원래 이곳에서 유명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참여하는 음악가의 숫자라든가,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 이곳에서도 걱정이 많아요. 관광객이 대략 예년의 3분의 2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유럽 일대의 실물경기 침체 여파가 큽니다. "실제로 바치 거리 중앙대로에서 한 블록 뒤편에 있는 상가건물로 들어가자 'Offices to Let'(상가 세입자 찾습니다)라는 간판이 붙은 점포가 즐비했다. 경기가 한창 좋았던 2년 전 집중적으로 공급된 상가들이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입자를 찾지 못해 대규모 공실사태를 빚고 있는 것.
바치 거리의 이런 모습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동유럽의 현 주소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동유럽 경제가 마지막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헝가리부터 살펴보면 작년 2분기에 2.1% 수준이었던 이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이후 △2008년 3분기 1.3% △4분기 -2.5% △2009년 1분기 -6.7% 등으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헝가리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6.5%로 바닥을 친 뒤 내년에는 -0.5% 수준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2013년은 돼야 할 것이라는 게 헝가리 정부의 전망이다. 경제규모가 축소되면서 고용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작년 2분기에 7.5%였던 실업률은 지난 1분기에는 9.0%로 상승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3국을 포함한 동유럽 10개국의 분기별 평균 경제성장률은 작년 1분기에 4% 수준에서 올 2분기에는 -8%대로 급전직하했다. 특히 발틱3국은 2분기에 경제규모가 16~23%나 뒷걸음쳤다. 동유럽 10개국의 평균 실업률 역시 작년 말 현재 7.4%에서 지난 6월에는 11.0%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동유럽 경제가 안고 있는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 때문에 실물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첫째는 여전히 취약한 금융부문의 경쟁력.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금융시장의 특성상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번 빠져나간 외국자본이 또 다시 유입되기 쉽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 2분기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6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중은 50%를 상회한다. 특히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등 3개국은 대외채무가 GDP규모를 넘어선 상황이다. 이런 금융시스템에서 해외자금 유입이 급감한 것은 동유럽 국가들의 자금조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심각한 수출부진이다. 올 1분기 동유럽 10개국의 GDP 대비 상품수출 비중의 평균치는 약 51%로,중국(38.0%) 유로존(33.8%) 미국(8.5%)보다도 훨씬 높다. 이런 가운데 독일 등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침체로 1분기 동유럽 국가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6%가 감소했다.
마지막으로는 재정적자 증가가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동유럽 국가의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체코 불가리아 등 4개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국가들이 EU의 가이드라인인 GDP 대비 재정적자 3% 비율을 지키지 못해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재정적자 및 공공부채의 증가를 우려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신용등급을 각각 BB와 A-로 하향 조정했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해외자본의 유입을 감소시키고 자본의 이탈을 야기해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는 등 동유럽 경제전반에 악순환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결국 동유럽 국가들은 돈을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요즘과 같은 시기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동유럽 경제악화가 연쇄부도 사태로까지는 발전하지 않고 있지만 여러가지 리스크로 세계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당분간 보수적인 사업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다페스트=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