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재생용지 교과서' 취지 좋지만…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내년부터 중 · 고등학교 교과서를 국산 폐지(廢紙)가 30% 이상 섞인 재생용지(GR규격)로 제작,공급키로 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과서는 지금까지 100% 천연펄프를 원료로 하는 고급종이가 사용됐다. 종이를 만들려면 많은 목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녹색환경을 강조하는 시민단체 등에서 재생용지,즉 폐지를 재활용한 펄프로 만든 종이 사용을 권장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재생용지 교과서 도입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재생용지 교과서 도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에 한때 사용했다가 컬러 사용에 따른 인쇄감 및 품질 저하,재생지에서 묻어나오는 유해성 형광물질 등 인체 유해성 논란으로 곧바로 중단됐다. 최근 정부가 검증한 결과 기술 발달로 이 같은 약점은 극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재생용지 교과서 도입으로 자칫 폐지 수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용 재생지는 일반 폐지나 폐신문지를 원료로 쓰지 않는다. 제지회사나 인쇄업체에서 종이를 재단하면서 남기는 자투리나 복사용지인 고급폐지가 이용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고급폐지 사용량은 47만t(국내산 34만t)으로 대부분 화장지 업체나 백판지 업체가 주된 수요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교과서 용지 사용량은 연간 5만4000t 규모다. 이를 모두 재생용지로 만들려면 약 6만3000t의 폐지(수율 85%기준)가 추가로 필요하다. 더구나 폐지는 9~10월 교과서 제작 시점에 일시적으로 소요된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재생지 사용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폐지 부족 사태를 야기,해외에서의 폐지 수입을 늘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폐박스,폐신문지,일반폐지,고급폐지를 철저하게 분리 수거만 해도 자급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품질 향상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폐지를 수출할 때 종류별로 신고하도록 해 수급 차질이 빚어질 경우 대응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재생용지 교과서 도입이 폐지가격 앙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김후진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