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글로벌 기업·자원 싹쓸이…'그랜드 차이나' 가속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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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격변의 현장을 가다베이징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40분쯤 달리자 화샹중고차시장이란 거대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1만평의 면적에 7000여대의 자동차가 전시돼 있는 베이징 최대 중고차 매장이다. 지난 1일 찾은 이곳은 차와 사람이 뒤섞여 북새통이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 3월부터 1600㏄ 이하의 자동차를 살 때 등록비를 면제해주면서 시작된 '승용차 붐'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고 있다. 소형차를 취급하는 리우밍씨는 "손님이 많아 물건이 달린다"며 웃었다.
④ "위기가 기회" 도약하는 중국
중국의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7.9%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국가란 타이틀이 부여됐다. 게다가 GM 등 글로벌 메이커,아프리카의 유전,호주의 철광석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쓸어담으며 '대(大)중국' 만들기가 한창이다. 금융위기는 중국에 역설적으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되고 있다.
◆세계를 사들이다
홍콩 중국경제연구소 옌샹 연구원은 "칭기즈칸 시대에 기마병이 세계를 점령했다면 지금은 차이나머니가 세계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2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은 글로벌 M&A시장을 '중국으로 가는 일방통행'으로 만들었다. 세계 M&A 거래에서 2007년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0.7%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년 1.6%로 뛴 후 올해 1분기에 4.0%로 급증한 게 이를 입증한다. 미국의 상징인 지프차 허머 브랜드의 운전사는 올 들어 GM에서 중국 쓰촨성의 텅중중공업으로 바뀌었다. 볼보를 놓고는 같은 중국업체인 베이징자동차와 지리자동차가 접전을 벌였다. 베이징자동차는 GM의 자회사인 독일 오펠 인수도 추진했었다. 호주와 캐나다 자원은 차이나머니의 주요 공격 거점이다. 중강그룹이 호주 미드웨스트에 11억달러를 투입하고,우강그룹이 캐나다 채광업체인 톰슨에 2억4000만달러를 출자하는등 무차별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최고사령관은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을 내세워 M&A를 진두지휘하는 한편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를 통해 해외 부동산, 원자재, 금융 등에 전방위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CIC는 올 들어 모건스탠리에 12억달러를 추가 출자했다. 영국과 호주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헤지펀드에 60억달러를 투자했다. "올해 해외 투자 규모를 작년의 10배로 늘리겠다"(로우 지웨이 CIC 회장)며 올 상반기 자산운용 매니저를 전 세계에서 공개 채용했다. 마오쩌둥이 공산정권을 수립한 뒤 대약진운동을 펼치며 내세운 '초영간미(超英走干美: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겠다)'의 깃발이 다시 오르고 있는 셈이다.
◆유일한 성장 엔진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떨고 있던 지난 2월 중국은 유럽에 구매사절단을 두 차례 파견했다. 한 번에 백억달러어치가 넘는 물건을 사줬다. 그 다음엔 투자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대만에는 이미 세 차례 구매사절단을 보냈고,미국에는 중 · 미전략경제대화에 앞서 투자단을 내보냈다.
올 들어 7월까지 EU의 대중국 수출증가율은 작년 동기대비 -12.2%다. 연초인 1월엔 -21.1% 였다. 같은 기간 일본의 대중 수출증가율은 -43.3%에서 -24.3%로 올라왔다. 미국도 -29.9%에서 -15.1%로 개선됐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국가별 수출증가율은 악화됐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해선 -9.0%에서 -20.3%로,미국은 -9.8%에서 -16.5%로 악화됐다. EU 역시 -17.4%에서 -24.8%로 떨어졌다. 중국의 수출보다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구세론(救世論)'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GM은 미국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강화하기로 했다. 애플도 아이폰을 중국에서 팔겠다고 나섰다. 삼성 LG 등은 그동안 기술 유출 때문에 기피하던 LCD 공장을 중국에 짓기로 했다. ◆'엉클 샘'을 할퀴다
티모시 가이트너,힐러리 클린턴 등 미국의 재무와 국무장관이 올 들어 잇따라 베이징을 방문했다.
예전처럼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대신 미국 국채를 계속 사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중국은 지난 6월 말 현재 7764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가진 최대 보유국이다. 중국 정부는 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오히려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의 자존심인 달러의 위상에도 흠집을 냈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은 달러대신 슈퍼화폐를 만들어 기축통화로 쓰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편으로는 위안화를 무역결제에 사용,국제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7월 상하이전기집단이 홍콩의 중국은행을 통해 위안화로 무역결제를 시작했다. 중국 측은 지난달 말에는 위안화결제 시험 실시 대상 기업을 400개에서 600개로 늘렸다. 왕치산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위안화 국제화 특별대책반도 만들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에도 위안화 무역결제에 대비,서비스 계약을 체결하자는 공문을 보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