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우리은행 손실은 은행법 위반 탓"

황영기 KB지주 회장이 '바람앞의 등불' 신세다. 금융감독원은 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황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으로 일할 때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낸 것은 은행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최종 징계수위는 9일 금융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금감원 "은행법 위반 명백"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위원장 이장영 금감원 부원장)는 이날 저녁 늦게까지 계속된 회의에서 황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은행이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에 투자한 규모는 15억8000만달러,그로 인한 손실은 1조6200억원이다. 이중 황 회장이 퇴직한 2007년 3월까지 투자액은 10억달러 가량,손실은 1조1800억원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황 회장이 CDO 등에 투자한 것이 은행법 54조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은행법 54조는 '금융사 임원이 건전한 운영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하는 때에는 업무집행의 정지를 명하거나 주주총회에 대해 그 임원의 해임을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상품설명서에 '유통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수 있고 유동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쓰인 CDO 투자를 감행한 것은 건전 경영을 크게 해친 행위란 것이다. 또 2006년 투자금융(IB) 담당 부행장에게 경영목표를 연초보다 1조원 이상 높임으로써 CDO 투자를 부추긴 것은 은행법 23조의 '경영목표는 이사회의 심의 ·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우리은행 IB본부는 10억달러가 넘는 CDO,CDS를 사들였다. 내부 리스크관리위원회 규정을 바꿔 위험성이 높은 투자시 사전 협의토록 한 절차를 없애고 5000만달러까지 부행장 전결로 투자할 수 있도록 바꾼 것도 은행업감독규정 30,31조의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구성해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할 것'을 위반했다는 게 금감원 시각이다.

◆황 회장 재심청구 가능성황 회장은 이날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법적 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 측 변호사를 통해 "어느 국가도 금융사의 유가증권이나 채권 투자에 대해 손실이 났다고 해서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은 사례가 없다"고 반박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적 경고''문책 경고''직무정지''해임권고' 등 4단계인데 직무정지 이상의 중징계는 금융위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날 제재위가 결정한 징계수위는 9일로 예정된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금융위에서 직무정지로 결정되더라도 황 회장이 현직인 KB지주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 황 회장의 임기는 2011년 9월에 끝난다. 그러나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장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직무정지란 중징계를 당한 사람이 금융지주 회장직을 계속 영위하는 게 맞는가"라고 반문했다. 연임이나 다른 금융사 이직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지주회사 감독규정(13조6)은 '직무정지 징계를 받으면 임원자격 요건에 따라 업무집행정지 종료일로부터 4년간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3년까지 새롭게 금융회사에 취직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황 회장 측 관계자는 "금융위의 결정이 나면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황 회장의 경영책임에 대한 징계를 미뤄왔던 예금보험공사도 금융위 의결 직후 예보위를 개최해 징계 수위를 확정할 계획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