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한 주인만 섬기는 진돗개, 특수견으론 안 맞더라고요"
입력
수정
삼성생명 특수견 조련사 박남순씨지난 9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삼성생명 구조견 · 탐지견센터.이곳의 한 실습 훈련장은 공항과 똑같은 시설과 환경으로 꾸며져 있다. 검색대 한 쪽에는 사람만큼 커다란 개가 조련사 곁에서 숨을 헐떡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조련사가 잡고 있던 줄을 놓자 개는 검색대 위로 뛰어올라가 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뭔가를 다급하게 찾는다. 이때 조련사가 과일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만히 검색대 위에 올려 놓는다. 그러자 곧바로 개는 상자를 찾아내 내부를 뒤적거린다. 조련사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수건 뭉치를 개한테 상으로 물려준다. 그러자 개는 기뻐서 수건 뭉치를 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강아지 두살될때까지 훈련…특정 냄새 기억시키는데 3개월
인명구조ㆍ맹인안내ㆍ마약탐지…아홉살에 은퇴ㆍ애완견으로 분양
군견병으로 犬公과 첫 인연…실종자 찾다 바위 아래 추락도
'태산'이라는 이름의 이 수캐는 원산지가 캐나다인 여섯 살짜리 '라브라도 리트리버'종으로 당초 맹인 안내견으로 길러졌으나 지금은 직업(?)을 바꿔 과일이나 채소 등 국내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찾는 탐지견으로 활동 중이다. 한동안 기쁨을 만끽하던 개를 지켜보던 조련사가 이내 다시 줄을 잡고 '앉아'라고 명령하자 개는 순순히 뒷다리를 모아 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태산을 훈련시키고 있는 박남순 선임조련사(40)는 18년 경력의 베테랑 개 조련사다. 최근 문화재 지킴이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한 흰개미 탐지견 '우리' '보람' '파도'도 그가 길러냈다. 흰개미는 목조 문화재를 훼손하는 주범인데 탐지견들은 흰개미가 발산하는 페로몬 향으로 이들을 찾아낸다. 오랜 시간을 개와 함께 호흡해온 박 조련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개와 첫 인연은 어떻게 맺었나요.
"사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개와 큰 인연이 없었어요. 어릴 때 시골 집에서 개를 몇 마리 기르긴 했지만 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죠.대학에서도 축산 관련 학과가 아닌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했고요. 그런데 군대 시절 갑자기 군견병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죠.말이 제안이지 명령이나 다름 없는데 안 할 수 있나요. 그렇게 개와의 인연이 시작됐는데,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 교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젠 눈빛만 봐도 녀석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죠."▼개한테 물린 적은 없나요.
"왜 없겠습니까. 군대 시절 한 번 크게 물린 적이 있습니다. 개를 처음 접해 보니 익숙하지 않았던 때였어요. 하루는 개를 데리러 견방(개집)에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털을 바짝 세운 채 눈에 불을 켜고 저를 쏘아보는데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저를 덮쳐서 아랫배를 물렸죠.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 흉터가 아직도 있어요. "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가요. "절대 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공격 의사가 없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죠.그냥 별 관심없다는 듯이 천천히 가면 됩니다. 뛰어서도 안 돼요. 개는 사냥 본능이 있어서 도망가면 쫓아오게 마련이거든요. "
▼개는 언제부터,어떻게 훈련시킵니까.
"갓 태어난 강아지 때부터 훈련을 시작합니다. 이때가 특수견의 자질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특수견은 사람을 위해 고결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사실 개 입장에서는 임무 자체가 하나의 게임입니다. 예를 들어 인명 구조견이 때로는 다치기도 하면서 필사적으로 실종자를 찾아내는 것은 동정심 같은 고상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주어질 보상 때문이죠.따라서 특수견으로 활동하려면 그 보상에 대한 집착이 광적이어야 합니다. 개들은 일반적으로 공이나 수건 뭉치와 같은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조련사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아주면서 개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찾아내 그걸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할 만큼 집착하게 만들어야 해요. "▼말이 통하지 않는 개한테 그런 훈련을 시키자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겠네요.
"어떤 개라도 후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냄새는 잘 맡습니다. 그러나 특정 냄새를 기억하고 구별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웬만한 자질을 갖춘 특수견이면 특정 냄새를 기억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3~5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냄새가 강한 것에서 약한 순으로 탐지물을 바꿔가며 교육해요. 흰개미 탐지견의 경우 다른 종류의 개미와 바꿔 가며 흰개미에만 반응하도록 교육시키는데 나중에는 볼펜 냄새와 흰개미 냄새의 미세한 차이까지도 구별하도록 하죠."
▼잘 훈련된 특수견은 한 마리에 얼마나 하나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기는 하는데 사실 특수견은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 맹인 안내견 한 마리 값이 7만~8만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1995년부터 각각 구조견 · 탐지견센터와 맹인안내견센터를 삼성에버랜드에 위탁 · 운영 중이다. 이들 센터는 민간 기관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특수견 양성소로 삼성이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자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서 양성한 인명 구조견,맹인 안내견 등은 필요한 개인 및 기관에 무료로 분양하거나 센터가 직접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최근 임진강 실종 · 사망자 수색 작전에도 애버랜드 인명 구조견과 조련사들이 이틀간 참여했다. 두 센터에서 현재 훈련 중인 특수견은 모두 50여마리,조련사는 총 30여명에 달한다.
▼훈련받은 개는 얼마나 일할 수 있나요.
"태어난 지 2년 정도면 훈련이 끝납니다. 임무의 유형이나 개의 종류에 따라 활동 기간에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아홉 살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은퇴한 이후에는 자연사할 때까지 원하는 사람에게 애완견으로 무료 분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오랜 기간 고락을 함께한 개가 수명을 다할 때 기분이 어떤가요.
"사실 조련사는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의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어떤 개한테 너무 정을 쏟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물론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냉정과 절제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
▼진돗개는 왜 특수견으로 키우지 않나요.
"사실 진돗개도 특수견 목적으로 훈련시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돗개는 특정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특수견으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났지요. 또 사냥 본능이 워낙 두드러져 목표물을 최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 임무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 탐지견으로 훈련시키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흰개미 탐지견이 최근 문화재 지킴이 상을 받았는데요.
"2007년 6월부터 국내 최초로 흰개미 탐지견 양성을 시작했어요. 당초 폭발물 탐지견과 마약 탐지견으로 각각 길러졌던 '보람'이와 '우리'를 흰개미 탐지견으로 재교육을 시켰죠.흰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내뿜는데 볼펜 잉크 냄새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흰개미조차도 볼펜으로 선을 쭉 그려놓으면 자신들의 냄새로 착각해 선을 따라 이동할 정도죠.그런데 탐지견은 이 차이조차도 정확하게 구별해냅니다. 문화재청의 요청으로 지난 2년간 서울 경복궁 · 창덕궁 · 종묘 등 5대 궁을 비롯해 해인사 송광사 등 전국 20개소의 목조 문화재에서 흰개미 탐지 활동을 벌였고 이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6월 '문화재 지킴이' 상을 받았습니다. "
▼현장 근무가 많겠어요.
"주로 군,경찰,세관 등 각급 기관에서 요청이 많이 옵니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 나가 직접 실종 · 사망자 수색,흰개미 탐지,농 · 수 · 축산물 검역 등 다양한 활동을 벌입니다. 최근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에서도 파견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1999년 대만에서 지진 사태가 났을 때 삼성사회봉사단과 함께 파견돼 실종자 수색을 도운 적이 있는데,이후 대만 가오슝시와 인명 구조견 양성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현장을 다니다 보면 위험한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서울 관악산에서 실종자를 수색할 때였어요. 인명 구조견과 함께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바위를 잘못 디뎌 3m 아래로 추락했어요. 다행히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죠."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18년 동안 한 우물을 파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영국 뉴질랜드 등의 선진국으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죠.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개와 함께 현장을 누비면 몸은 피곤해도 이웃과 사회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크니까요. "글=이호기/사진=정동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