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재능기부

미국 변호사들은 연 50시간 이상 공익활동을 하도록 돼 있다. 미국 변호사협회가 1993년 정한 지침이다. 변호사 50인 이상의 로펌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연 60~100시간(연간 비용청구 시간의 3~5%)을 공익활동에 써야 한다. 로펌은 개인변호사와 달리 고객의 대부분이 기업이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약자를 만날 기회가 적다는 게 이유다.

봉사활동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미국 변호사는 4만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변호사를 쓸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료변론이나 법률 서비스를 해주는 경우가 가장 많다. 금융 및 부동산 사기,의료 사고 등을 대신 처리해주고 유색인종을 위한 차별 철폐,약자들의 인권 보호 등에 앞장서기도 한다. 미국 변호사협회는 매년 로펌의 공익활동에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50대 로펌의 대부분이 봉사활동 순위 50위와 겹친다고 한다. 봉사를 많이 할 수록 사회적 인식도 좋아져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식이나 기술을 활용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프로보노(pro bono)'라고 한다.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을 가졌다. 일종의 재능 기부다. 당초엔 주로 변호사들의 법률 서비스를 의미했으나 요즘엔 의료 세무 회계 마케팅 등 여러분야의 공익활동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로보노 운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변호사법에서 연 20시간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한 데 따라 변호사들의 프로보노 활동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컨설턴트 등이 팀을 이뤄 사회적 기업(이윤 추구 대신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의 설립방법을 자문해주고 세금 회계 등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도 적극적이다. SK그룹의 경우 법률 재무 인사 마케팅 담당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SK 프로보노'를 최근 발족시켰다. 우선 214명으로 출발했지만 참여인원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기업 전문컨설팅 회사인 SCG는 아름다운 가게,동북아평화연대 등 20여 사회적 기업 컨설팅을 한 데 이어 대학생들을 인턴으로 뽑아 실습을 시키면서 예비 프로보노들을 양성하고 있다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이젠 기부도 돈이나 물건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면 무엇이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되는 것이다. 재능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건강해 진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