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섬세…때론 격렬…몸짓으로 펼친 러브스토리

발레 '오네긴' LG아트센터 무대에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은 오만하고 충동적인 '나쁜 남자' 오네긴과 순박한 처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첫사랑의 열병과 뒤늦은 회한 등 인물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표현해야 하는 '드라마 발레'의 특성상 무용수들은 화려한 기량을 과시하기보단 섬세한 감정 연기에 초점을 맞춘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한 내용은 단순해 보인다. 순진한 타티아나는 잘생기고 세련된 오네긴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거만한 오네긴에게 타티아나의 수줍은 구애는 우스워보일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오네긴은 아름답고 우아한 공작 부인이 된 타티아나에게 연심을 품게 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관계는 두 사람의 파드되(2인무)에서 잘 드러난다. 통상 파드되에서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거나 사랑을 나누는 열정적인 남녀가 쌍을 이루는데,'오네긴'의 파드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연극적이다. 1막 파드되가 그렇다. 귀찮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몸을 빼버리는 오네긴과 그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며 파드되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타티아나의 모습은 짓밟힌 소녀의 순정을 잘 드러낸다.

매몰차게 버렸던 옛 여자를 사랑하게 된 오네긴이 타티아나에게 뜨겁게 구애하는 3막에서 선보이는 파드되도 마찬가지다. 타티아나가 끝내 마음을 열지 않자,오네긴은 매달리듯 안타깝게 춤을 춘다. 이 커플이 유일하게 행복한 파드되를 선보이는 건 타티아나의 환상 속에서다. 1막 2장에서 연애편지를 쓰다 깜빡 잠든 타티아나는 꿈속에서 오네긴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발레에서 타티아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은 마지막에 나온다.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타티아나의 절망적 운명을 표현하는 데에서 발레리나의 연기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니 눈여겨보자.2004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내한공연 당시 타티아나 역을 맡았던 발레리나 강수진씨는 크게 오열해 객석을 장악했다.

국내 발레단이 '오네긴'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타티아나 역에는 황혜민,강예나,강미선이,오네긴 역으로는 엄재용,이반 질 오르테가,이현준이 캐스팅됐다. 서울 LG아트센터에서 20일까지 공연된다. (02)2005-0114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