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시장통 환호와 정치 대통령

지난 10일 서울 남대문 시장은 환호의 도가니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왔다는 소식에 시민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보고 싶었다" "파이팅" 등의 함성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도 연신 "고맙습니다,사랑해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대선유세전을 방불케 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연신 팔을 하늘로 뻗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청와대는 이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와 이어진 금융위기,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으로 수세에 몰려온 이 대통령이 이제 국정운영에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청와대는 한마디로 '업'된 분위기다. 집권 1년 반이 넘어서야 일할 맛이 난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 대통령이 두 번이나 국민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던 지난해와는 180도 달라졌다.

청와대는 이런 분위기 반전을 무엇보다 '정치인 이명박'으로의 변신에서 찾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여의도 정치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둬온 게 사실이다. 정치보다는 경제적 효율성과 진정성이란 화두가 상위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지난 6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중도강화론을 꺼내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중도실용,서민,통합이 연일 강조됐고 이제 정치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실히 옮겨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치의 계절이 왔다"고 표현했다.

'정치인 이명박'의 백미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발탁이다. 절묘한 지점에 돌을 던졌다는 평가다. 여야 모두에 복잡한 셈법을 안겨줬다. 여당 내에선 대선주자 한 명을 더 늘림으로써 차기 관리에 들어갔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취임 다음 날 만났고 박근혜 전 대표와도 16일 회동한다. 차기 대선 주자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정치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따른다. 야당이 내심 더 놀라는 눈치다. 잠재적 야권 대선후보를 뺏기면서 민주당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서민 민생'은 치밀한 정치적 계산 아래 나온 전략이다. 최근 가는 곳마다 서민,발표하는 정책들도 서민,회의의 메인 주제도 온통 서민이다.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지율도 상승세다. 국정운영 지지율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10%포인트 이상 올라 일부 조사에선 취임 초의 50%대로 복귀했다. 민주당은 '서민마케팅'을 선점당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특임장관직을 만들어 정무기능을 강화한 것이나 연일 의원들을 불러 '식사 정치'를 하는 것도 '정치 프렌들리'의 일환이다.

그렇지만 만만찮은 과제도 남아있다. 우선 정 후보자의 발탁은 '이종교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1,2인자의 관계는 묘하다. 잘되면 '유비와 제갈량'의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관계 설정이 매끄럽지 못하면 자칫 불협화음을 낳을 수 있다. 단순한 정치적 포석을 넘어 '+α'의 실적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대권주자 간 경쟁이 조기에 점화되면 권력 누수를 염려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서민 마케팅이 단기적,정치적 성격이 짙다면 중장기적 국정 과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정치인 이명박'의 정치력은 오히려 지금부터 더 중요하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