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리먼 브러더스 전직 부사장이 폭로한 '리먼이 망한 이유'

상식의 실패 로렌스 G. 맥도날드·패트릭 로빈슨 지음/ 이현주 옮김/ 컬처앤스토리/ 512쪽/ 1만9800원
2008년 9월 15일,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66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부채를 기록한 채 파산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단순히 한 투자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미국 금융력(金融力)의 상징인 투자은행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돈만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 금융회사들의 부도덕성,부채의 바벨탑 위에 세워진 파생상품의 허구성 등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일대의 대사건이었다. 게다가 권력의 맨 윗자리에 앉아 수백억 원이 넘는 연봉과 자신이 보유한 주식 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최고 경영진의 독선과 아집이 조직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위기에 빠뜨리는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갖는 이런 총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리먼브라더스는 실패학 교재로는 딱 안성맞춤이다. 더욱이 그 실패 과정을 내부자의 시선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면,반면교사용 텍스트로는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리먼브라더스의 전직 부사장인 로렌스 G. 맥도날드의 《상식의 실패》는 이런 성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맥도날드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사(破産史)의 시작을 글래스-스티걸법의 폐지에서 찾고 있다. 글래스-스티걸법은 1929년 대공황의 고통스런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법이다. 1933년 제정된 이 법의 핵심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의 방화벽에 있다. 이 방화벽이 사라짐으로써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복잡하고 밀접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투자은행에서 생겨난 문제가 곧바로 상업은행으로 번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금융혁신'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각종 파생상품과 2000년대 들어 치솟는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만나면서 각종 부동산 관련 파생 상품이 등장하게 됐다. 문제는 상식을 벗어난 부동산 담보 대출이 화근이었다. 대출 서류를 작성할 때 아예 소득난을 빈칸으로 남겨두는 경우도 허다했고,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믿음 아래 담보 보다 많은 금액을 대출해 주기도 하고,초기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각종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리먼브라더스의 최고 경영진은 겉으로 드러난 수익에 열광했고,모기지 사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의 말처럼 "풀장의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수영복을 걸치지 않고 있는지 알게 됐다. "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방화벽이 없어지고,금융이 세계화되면서 서로 얽혀 있는 마당에서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자 미국의 위기가 세계의 위기로 확대됐던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해 리먼브러더스 내에서 이미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위험 신호를 계속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까.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최고 경영자의 '독선과 아집의 치명적 리더십' 때문이었다. 자신의 측근들만 거느리고 경쟁자나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가차 없이 제거하거나 고립시키는 상황에선 초기 위기 감지자들의 신호는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원인만 조응하는 것은 아니다. 리먼브러더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실패에서부터 리더십의 실패까지 여러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실패의 원인은 넓게 보면 늘 상식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아무리 똑똑한 인재들과 자금력을 확보하고 슈퍼컴퓨터로 무장한 시스템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상식을 지키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