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공생원의 속앓이 '아내 뱃속의 아이는 누구 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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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장편소설/ 문학동네/ 248쪽/ 1만원조선시대 기준으로 손자를 보고도 남을 마흔다섯 나이에 부인이 첫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 날뛰어야 할 텐데도 남편 공생원의 시름은 깊어지기만 한다. 혼인 후 한참이 지나도록 애가 들어서지 않자 걱정 끝에 찾아간 의원이 공생원에게 이렇게 귀띔했던 탓이다. "생원님이 문젭니다. 마나님 탓하실 것 없지요"
그 의원이 돌팔이라 신빙성이 떨어지긴 해도 찜찜함은 벗어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부인 태중의 아이는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무너져가는 조선시대 인간군상을 그린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소설가 김진규씨는 두 번째 장편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의 배경도 조선시대를 택했다. 그러나 전작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반대로 이 작품은 가벼운 코믹 사극에 가깝다.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공생원은 차마 "그 뱃속의 애가 누구 애인가"란 질문을 속시원히 하지 못하고 탐정처럼 혼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주변의 모든 남정네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안팎으로 저를 거치셨으니 믿고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란 의원의 말도 수상쩍고,자기 부인을 다정하게 '송아'라고 부르는 저포전 남자도 의뭉스럽다.
잘생긴 노비도,부인의 팔촌도,두부장수도 모두 의심스럽다. 수상한 자들을 용의자로 올렸다 뺐다 공생원이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출산은 임박한다. 소설의 잔재미는 공생원의 소심한 모습에서 나온다. 신경 좀 썼다 싶으면 영락없이 아랫배에서 꽈리주머니 터지는 소리가 나며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고질병을 가진 그.능청맞은 외간남자들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주변머리 없는 그.자기보다 키 한 뼘 정도가 크고 몸무게도 너덧 근은 더 나가 보이는 아내 앞에서 주변머리 없이 '고개 숙인 지아비'가 되는 그.당사자 공생원은 괴롭겠지만 보는 사람은 흥겨운 묘사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