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유재섭 이사장 "20년된 기계로 실습…기능올림픽 金따도 고졸이라고 홀대"

한국산업인력공단 유재섭 이사장

한국은 이달 초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승하며 2007년 일본 시즈오카 대회에 이어 2연패의 쾌거를 이뤘다. 40개 종목에서 금메달 13개,은메달 5개,동메달 5개,우수상 12개를 수확했다. '타도 한국'을 외치며 칼을 갈았던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직전 대회보다 더 벌어진 성적차에 망연자실했다.

그렇지만 뛰어난 성적의 뒤에는 어려운 한국 기능훈련의 현주소가 있다. 6개월여 합숙기간에 한국대표팀은 20~30년 된 기계를 가지고 연습해야 했다. 변변한 훈련 장소가 없어 기업체 공장과 공업고등학교를 전전했다. '한강의 기적'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고 있는 제조업 기능직은 명맥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40회 기능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이었던 유재섭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우승의 기쁨보다 더 많은 과제와 책임감을 안겨준 대회였다"고 강조했다. ▼2위와 큰 차이로 우승했지만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스위스 등 전통의 라이벌 국가 외에 브라질 대만 등의 기능 수준이 놀랄만큼 발전했습니다. 한국 일본을 타깃으로 집중 훈련을 한 유럽 국가들과의 경쟁도 힘들었어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유럽연합(EU) 소속이라는 연대감을 토대로 담합에 가까울 정도로 서로를 밀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

▼편파 판정 시비도 많았겠군요. "모바일로보틱스 시합에서 한국팀은 첫날과 둘째날 모두 미션을 완수하며 만점을 받았어요. 일본이 2등이었고 다른 나라 로봇들은 아예 작동조차 하지 않았고요. 그러자 심판들이 공통 기계부품상의 결함이라며 참가국의 점수를 모두 만점 처리하더군요. 세째날부터 원점에서 다시 시합을 치러야 했죠.(모바일로보틱스 분야 금메달은 결국 한국선수가 수상했다) 한국의 지도교사가 대회 장면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 "

▼대회를 치르면서 느낀 소감이 있다면요.

"선진국들은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강화하고 있음을 알게 됐지요. 대회에 참가한 다른 나라 선수단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각 국의 제조업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서비스 부문에서 국가 경제를 흔드는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국가 경쟁력의 근간은 제조업 기반을 다지는 데 있다는 판단을 갖게 된 거죠.이번 기능올림픽 성과를 자국 제조업 활성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지를 매우 강하게 읽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기능인력 정책에 대한 지적도 많습니다.

"한국 경제 고성장의 출발점이던 1970년대에는 공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았지요. 당시만 해도 국가나 지자체가 앞장서서 숙박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쳤으니까요. 공고 상위권 학생들의 이공계 대학 진학열도 높았고요. 그때의 기술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세대는 이제 은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공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기능인들의 사회적 위상은 점점 약화되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기술을 가진 인재도 고졸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냉대를 받고 승진에서 밀립니다. 공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20년이 넘은 기계로 배우고 그나마 실습재료비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기능인력을 적극 양성하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

▼정부가 기능올림픽 전후로 일부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기능장려법을 개정하고,기능올림픽 선수촌 개념인 국제기능센터를 건립키로 하는 등 뒤늦게나마 기능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 팔을 걷어붙인 것은 고무적이라고 봐요. 국제기능센터 건립 추진은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40회 대회에 참가한 선수단은 훈련장소가 마땅치 않아 서울공고와 삼성전자,현대중공업 등에서 나눠 훈련을 했습니다. "

▼이번 대회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지원으로 관심을 끌었지요.

"삼성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경영진이 대회장을 찾아 격려했습니다. 이 전무가 선수단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죠.사실 삼성 현대중공업 등 일부 대기업은 기능인력의 중요성을 비교적 일찍 인식했습니다. 이 전무가 기능올림픽 현장을 찾아 '기능인력 양성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삼성은 올해 국내 대회나 국제기능올림픽 대회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능대회 입상자 중 가장 많은 150명을 취업시켰죠.삼성은 이번 대회에서 글로벌 이미지 제고에도 상당한 수확을 거뒀습니다. "

▼중점을 두는 기능인력 육성정책은요.

"우선 국가자격증에 대한 공신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협회나 기관에 흩어져 있는 국가자격 시험을 산업인력공단에 집중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능인력 채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나 대기업이 기능인력 채용시 가산점을 주도록 협약을 체결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많은 대기업과 지자체들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와 앞으로 활기를 띨 것으로 낙관합니다.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산업인력공단부터 전문가가 돼야 하겠지요. "

▼고용허가제가 5년을 맞았는데요.

"고용허가제 정착으로 외국인 근로자 도입에 따른 비리가 상당 부분 없어지고 인력난을 겪던 중소기업들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앞으로는 체류 기간을 늘리고 업종별 정원도 탄력적으로 운용해볼 계획입니다. 또 기능이나 한국어 테스트 등을 강화해 일본과 유럽처럼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춘 해외 인력을 받아들이는 방안도 강구 중입니다. "

▼산업인력공단의 해외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데요.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올해만 5000여명의 연수생을 배출했는데,2013년까지 2만3000여명을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KOTRA 등 다른 기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해외 한인 경제단체의 협조를 얻어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해야지요. "

▼노동 전문가로서 올 들어 노동계에 불고 있는 변화를 어떻게 보는지요. "민주노총 설립 멤버였던 KT,쌍용자동차 노조 등의 잇따른 민주노총 탈퇴는 이제 노동운동이 '현실에 기반한 운동'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치적인 거대 담론을 버리고 근로자의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합니다. 또 비정규직과 비조직원들을 아우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