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터키 소녀 부세

공기 중의 눅눅함이 가시고 아침 바람이 소슬해지는 가을 느낌과 함께 3년 전 이맘 때가 문득 떠오른다. 그끄러께 가을의 어느 날 밤새워 고민을 거듭하다 집을 나서면서 느꼈던 새벽 공기를 오늘 아침 똑같이 느끼며 당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른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프루스트는 어떤 향기를 통해 그와 관련한 예전 일들이 기억나는 경우를 작품 속에서 묘사했는데,비단 냄새뿐 아니라 음악이나 촉각,온도 등도 그런 자극을 불러오는 것 같다.

당시에 가졌던 고민은 7세 된 터키 소녀 부세의 수술 여부 때문이었다. 부세는 태어나면서부터 목뼈가 90도 가까이 휘어 있었다. 굽은 척추는 장기를 눌러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더 큰 문제는 성장할수록 상태가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목뼈가 신경을 누르고 있어 오른쪽 팔과 손가락에 마비가 진행되고 있을 만큼 심각했다. 시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호흡 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터키의 어느 병원에서도 수술에 나서지 못하자 마지막 희망으로 한국을 찾았던 것이다. 실제로 부세의 치료는 어려운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선 터키에서 우리나라까지 1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비행을 견딜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였다. 면역력이 약하고 수시로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상태에서는 긴 시간의 이동 자체가 심각한 위험이었다. 큰 수술을 견디기에는 환자가 너무 어리다는 점도 망설임을 거들었다. 척추 변형이 과도해 신경과 장기가 심하게 눌려 있다는 것은 아예 다음 문제일 정도였다.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부세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자국에서는 수술에 나서는 병원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결단을 내렸다. 자국 주치의이자 터키 앙카라 국립대 의대 교수인 야자르 박사를 통해 수술 결정 사실을 알렸고,부세 부모는 이동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부모의 절실함에 비해 형편은 여의치 못함을 전해 듣고 경비와 수술비 일체를 병원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마침내 부세는 2006년 12월 한국땅을 밟았다.

수술은 예상보다 어려워 보였다. 수일간의 정밀 검사와 의료진의 강도 높은 회의가 계속됐다. 지난 20여년간 쌓아온 첨단 의술과 장비,임상 경험을 총동원해도 26시간이 걸린 벅찬 수술이었다. 수술 전,아이는 파랗게 질린 작은 입술을 떨며 본능적인 두려움을 보였다. 부모 역시 자식의 고통을 대신해주고 싶은 연민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이의 목은 곧게 펴졌고,호흡과 마비도 회복돼 건강한 7세 소녀의 모습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했던 일련의 과정이 떠오른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의 커피 향이 몇 년 뒤 좋은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다짐하게 된다.

이상호 <우리들병원그룹 이사장 shlee@woorid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