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솔직토크] (10ㆍ끝) 김태호 경남도지사‥"남해안 누빌 호랑이 제대로 키우려면…"

거꾸로 걸린 한반도 :역발상 통해 공무원도 창의력 키워야
지중해보다 멋진 남해안 :美 마리나개발 4억弗투자…관광천국
정치는 내 운명 : 도지사는 95%가 정치.5%가 행정
사고뭉치 사람됐네 : 초등학교 성적표 '미' 천지…동네연예인
김태호 경남지사는 젊다. 호적상 1962년생이니 만 나이로 마흔일곱이다. 김 지사는 기세의 사나이다. 서른여섯에 도의원,마흔에 거창군수,5년 전 마흔둘에 경남도백이 됐다. 불가능하다는 판세를 모두 뒤집고 당선됐다. 가히 기호지세라 할 만하다. "이왕 키우시려면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를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 지사의 이 말을 도민들은 좋아한다. 185㎝의 훤칠한 키와 딱 벌어진 어깨,시원스러운 외모.의병이 많기로 유명한 경남의 기운을 닮았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었다. 그에게서 겸손이란 말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젊은 도지사에게 부족할 수 있는 겸손을 한손에 쥐고 다니라는 주변의 말을 귀담아 들은 듯했다. 비가 내린 지난 21일 경남 창원에서 4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솔직토크' 마지막 회 인물로 등장한 김 지사의 기세 속으로 들어가보자.

▼몇 년 전 공무원 노조와 맞짱 뜬 일화가 유명하던데요. "그랬죠.한번은 경남도 노조가 국가적 방어훈련인 을지훈련을 거부하겠다고 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이건 공무원의 순수성을 잃은 것이다.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판단했죠.공무원노조 사무실을 폐쇄시켜 버렸습니다. 반발이 심했어요. 노조가 식사 자리에까지 와서 플래카드를 들고 있기도 했습니다. 조상 산소를 파헤치겠다는 협박도 있었습니다. 복지나 인사문제 등에 대한 주장은 넘어가 줄 수 있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들이 정치세력화해서 투쟁하는 것은 용서 못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경남이 강성 노조 1번지입니다. 전농노(전국농협노조) 회장이 다 여기 출신입니다. 내가 온 뒤로 노조위원장 3명이 옷을 벗었어요. 지금은 경남도가 노사관계 모델 케이스가 됐어요. "

▼도정에서 마음 마케팅을 강조하는데 소개 좀 해주시죠.

"마음을 달리 먹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거지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경남도청이 망하는 방법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월간지 두께 분량의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답이 나왔다. 이거 안 하면 흥한다"고 했어요. 동태 파는 가게 얘기도 있잖아요. 같은 동태를 파는 가게 중에 특별히 잘 팔리는 가게를 가봤더니 박스에 이렇게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죽은 체하고 있는 동태입니다. '손님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였을까요? 이 가게로 몰린 거지요. 이게 마음 마케팅입니다. "▼동남권 국제 신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부산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더군요.

"정부의 용역 결과에 따르자고 합의했는데 부산만 도장을 안 찍네요. 저는 경남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 1000만~2000만명 인구가 존재하고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곳입니다. 또 신공항은 동남권은 물론 호남권과 충청권 일부까지 한 경제권으로 묶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통이나 접근성 등을 따져볼 때 경남 밀양이 제일 낫다는 생각입니다. 신공항 설립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제공항을 통해 중국과 일본 사람만 오게 해도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인천까지 왔다가 또다시 기차 타고 어떻게 남해안까지 오겠습니까. 물론 동네공항이 돼선 안 되겠죠. 정치적으로 동네공항을 만들어 놓으니까 애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

▼경남을 먹여 살릴 사업으로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남해안시대 프로젝트입니다. 그동안 남해안에선 도지사가 돌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남해안 자치단체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산으로 관광개발에 나서려고 해도 해상국립공원과 수산자원보호구역,문화재보호구역 등 중복 규제에 묶여 사실상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죠.경남이 정부에 건의했어요. 좀 풀어 달라.그 결과 지난 7월30일 '남해안 관광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발표됐어요. 오는 11월에는 남해안권발전종합계획이 확정됩니다. 벌써 미국 플로리다 마리나개발이 4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규제 제거만으로도 남해안계획의 80% 정도는 달성됐습니다. 크루즈섬,로봇섬,다이어트섬,머드팩섬,연예인섬,역사섬 등을 조성해 벤치마킹 대상인 지중해 연안보다 더 나은 남해안시대를 열겠습니다. 지중해에서 유명한 관광지도 과거에는 모기천국이었습니다. 정부가 개발에 나선 결과 세계적인 명소가 됐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으로서 거북선 찾기 사업도 계속할 것입니다. 난개발은 제가 책임지고 막을 것입니다. "

▼난개발을 막는다지만 환경 훼손이 심하지 않을까요.

"남해안 사업은 외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적 수준을 함께 향상시키자는 것이죠.남해안 시대의 컨셉트는 개발을 명분으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으면서 자연은 오히려 더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개발이 본격화하면 규제와 심사를 현재보다 더 강화할 생각입니다. 나무 한 그루 심고 창문 하나 낼 때,주택 지붕 경사 하나도 가장 환경 친화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죠.우리 아이들이 평생 살고 싶은 남해안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해 경남은 람사르총회를 치렀고,유엔 사막화방지협약 당사국 총회 유치에도 나설 정도로 철저한 친환경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맞추지 않고는 개발이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에 찬성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야죠.낙동강은 1300만 영남권의 젖줄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28명이 홍수로 사망하고 매년 재산피해가 1조원입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함안과 창녕이 비가 오면 저쪽이 무너져야 한다고 기도합니다. 갈수기에는 3급수 이하로 떨어져 식수로 사용하기 곤란할 정도입니다. 낙동강 살리기는 사람을 살리는 사업이자 환경을 살리는 사업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도전이든 반대는 있었습니다. 정부가 눈치보지 말고 가속도를 더 내야 합니다. "

▼중앙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남해안 프로젝트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부는 10년간 나눠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조기에 집행해줬으면 합니다. 경남의 수출 기여도는 압도적입니다. 경남지역 기업의 수출실적이 전반기에 11% 증가했어요. 다른 곳은 23% 감소했어요. 대한민국의 수출 흑자폭의 80%가 경남도에서 나옵니다. 기여도가 높은 만큼 지원도 많이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경남은 갈증난 준마와 같습니다. 물만 조금 준다면 무섭게 달릴 것입니다. "

▼기업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경남도 내에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업과 소통은 필수이지요. 공장장 모임은 그중 하나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직접 듣는거지요. 경남지역발전 협의회도 중요한 창구입니다. 여기에선 경영진의 고충을 나눕니다. 규제를 풀어주는 일도 해줍니다. 밀양산업단지를 7개월 만에 허가내준 것도 소통의 결과입니다.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면서요.

"지난주 수요일(16일) 마산시 중앙동 옛 롯데크리스탈호텔 부지(7900㎡)를 경남도립 마산의료원 건물 확장을 위한 부지로 기증받았습니다. 공시지가로 80억원쯤 되는데 무상으로 기증해달라고 부탁드렸죠.그런데 '계열사 주주가 있기 때문에 기증은 힘들다'고 해요. '그렇다면 회장님이 사들여서라도 개인 재산으로 기부해달라'고 떼를 썼죠.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기부하겠다"고 하더군요. 현재 마산의료원은 232병상에 지상 4층,건축면적 2만3000여㎡에 불과하지만 신축되면 지하 1층,지상 7층,건축면적 2만9700㎡ 규모로 확장됩니다. "

▼최연소 타이틀이 유난히 많습니다.

"마흔둘에 도지사가 됐어요. 최연소 도지사입니다. 2선을 했는데도 최연소입니다. 최연소 민선 군수(거창)이기도 했죠.도의원도 서른여섯에 됐어요. 최연소 타이틀이 많이 붙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유권자의 70%가 제 나이 밑입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동갑입니다. 경륜이 있다는 건 기득권과 옛날 정치에 물들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죠.새로운 변화를 주도한다는 면에서는 경륜이 없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최연소 타이틀을 늘 의식합니다. 예의도 발라야 하죠.그래서 절대로 혼자 걸을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습니다.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지요. 저는 더욱더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도지사는 어떤 자리입니까.

"사람들은 도지사 하면 행정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지사의 일은 95%가 정치이고 5%가 행정입니다. 행정을 잘 해야 한다면 30년 공직 경험이 있는 행정의 달인들이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갈등을 풀어내고 투자를 유치하고 하는 거의 모든 일이 정치입니다. 고도의 정치가 바로 도지사 업무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부친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소장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동아대에 다니다가 중퇴한 뒤 돈을 벌겠다며 택시업에 뛰어들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 하룻밤에 망한 거지요. 갑자기 소장수를 했어요. 에피소드가 있는데,하루는 아버지가 저에게 소 여물을 주라고 했어요. 그런데 TV를 보다가 깜빡 잊어버렸어요. 바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소죽도 제대로 못 주는 이 빌어먹을 놈아" 라며 호통이 대단하셨죠.3남1녀 모두 대학에 보냈는데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어느날 비누 한장 가지고 목욕탕에 가서 온종일 때를 빡빡 미셨어요. 평생직업이던 소장수를 딱 그만두시더군요. 당신은 소장수일이 당당했지만 자식들 앞길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목욕재계를 하신 거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이거 아세요? 전 소띠입니다. "

▼즉흥연설을 잘 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는 프리 스피처입니다. 원고를 보면서 마이크 앞에 서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대신 스피치 전날 제가 죽어요. 전날엔 잠을 못 잡니다. 담당직원이 초안을 써주긴 합니다만 그걸로는 행사의 성격을 파악할 뿐이죠.내일 가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더 정서적으로 와 닿을 수 있을까 밤새 고민하는 거지요. 5개 행사가 있는 전날은 완전히 초죽음이지요. 스피치를 잘 하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직전 30분이라도 책을 봅니다. 책을 안 보면 불안하고 자신이 없어요. 아무리 젊다고 해도 옛날 단어가 나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

▼선을 한번밖에 안 보고 결혼했다던데 부인이 미인이신가 보죠.

"아내는 동향 사람입니다. 나이는 저보다 세 살 아래입니다. 군대 있을 때 형이 결혼한다고 해서 2박3일 특박을 나왔다가 선을 봤어요. 저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아이들 잘 키워줄 여자를 원했어요. 다섯명과 잇달아 선을 보기로 했는데 제 처만 직업이 없었어요. 첫 선이자 마지막 선이 됐죠.지금은 대학 강의에도 나가지만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엄마 사랑을 받고 자랐어요. 사귄 지 6개월 동안 손을 못 잡았는데 아내가 먼저 제 손을 잡았어요. 논두렁에서였어요. 습관처럼 뒷짐 진 채로 제가 앞서 걸었죠.뒤따르던 아내는 저렇게 손을 내미는데 안 잡아주면 민망할까봐 잡았다고 했습니다. "

▼어린시절 사고뭉치였다고 하던데.

"동네에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습니다. 아낙네가 물을 길어 가면 몰래 뒤따라가 소똥을 넣기도 했어요. 힘든 아낙네는 집에 가서 물동이를 내리지 않고 바로 큰 항아리에 부었는데 그 물이 소똥물이 된 거죠.사람들은 그것을 저의 짓이라고 확신했어요. 공부는 못 했어요. 초등학교 통지표를 보면 정말 '미'천지였어요. 그러다 '우'가 하나 정도 있고,유일한 '수'는 음악이었습니다. 그것도 실기로 하면 '수'고 이론으로 하면 '가'였죠.3남1녀 중 둘째인데 제일 공부를 못 했고 한명쯤은 농사를 지으라고 해서 중3 때 책을 친구들에게 다 줘버렸어요. 그런데 윤리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한번은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깍듯이 인사를 했더니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그놈 변했네라는 거죠.아버지도 '태호 사람됐더라'는 칭찬을 들으신 거예요. 그 후 제가 급속도로 변해 갔습니다. "

▼중앙 무대에 진출할 계획은.

"완벽한 준비를 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중앙 진출은 제가 마음 먹는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죠.러브콜이 온다면 고민하겠지만 지금은 경남지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지방과 중앙 정치가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어느 위치든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바둑에서 상전이 벽해되고,벽해가 상전된다는 말이 있죠.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되는 이치라고나 할까요. 나를 믿고 지원해주는 사람이 넘치면 큰 물로 나갈 겁니다. "

글=김태현/사진=강은구 기자 hyun@hankyung.com

김태호 경남도지사는출생:1962년 경남 거창
학교:거창농림고,서울대,서울대 교육학 박사
경력: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경남도의회 의원,거창군수,32대 · 33대 경남도지사
좌우명:겸손
취미:바둑
애창곡:꽃을 든 남자
주량:소주 2병
저서:농촌사회문제론,살림살이 나누면 안됩니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