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결혼의 초상

결혼은 발열로 시작해 오한으로 끝난다.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 결혼 전엔 공작,결혼하면 당나귀.결혼 전엔 눈을 크게 뜨고,결혼 후엔 반쯤 감아라.전쟁터에 나갈 땐 한 번,바다에 갈 땐 두 번,결혼할 땐 세 번 기도하라.3개월 사랑하고,3년 싸우고,30년 참는다.

명언이나 속담을 들먹일 것도 없다. 살다 보면 남남이 만나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수시로 혼자 답답한 가슴을 치게 되는 게 결혼생활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양쪽 집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건 그렇다 치고 상대방의 사소한 습관이나 말투,행동 때문에도 복장이 터진다. 마시고 난 컵이랑 음료수 병 좀 알아서 치우지.일찍 들어와서 집안일도 도와주고 아이도 좀 챙겨주지.시댁(친정)에 전화 좀 자주 하지.술값(옷값) 좀 아끼지.처음엔 참고,몇 번은 좋은 말로 하지만 같은 일이 거듭되면 실망스럽고 실망은 짜증,짜증은 큰소리와 냉전을 부른다.

갈등을 줄이려면 상대를 바꾸려 들지 말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지만 그건 이론이고 눈 앞의 현실과 내 마음,내 형편을 몰라주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야속함은 싸움이 끝난 뒤에도 가슴 속 깊이 켜켜이 쌓인다. 그러다 보면 별 것 아닌 일에서 폭발,사느냐 마느냐로까지 이어진다.

사이 좋기로 유명한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삶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출간된 '버락과 미셸-미국 결혼의 초상'(크리스토퍼 앤더슨)에 따르면 부부는 결혼 초 불임으로 고생했고,다음엔 일에 매달린 남편 때문에 미셸이 이혼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는 것이다. 출세지향적 남편을 둔 아내들이 자주 겪는 상대적 박탈감 내지 혼자 버려진 느낌에 시달렸다는 얘기다. 담배꽁초 가득한 재떨이,선거 패배 후 떠안은 빚,남편에 대한 여자들의 추파 등도 불화의 요인이었는데 다행히 둘째딸의 병을 치료하면서 위태롭던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지난해 이혼한 11만6535쌍 중 가장 많은 28.4%가 결혼 4년 미만 신혼부부고,다음이 20년 이상 된 부부(23.1%)라고 한다. 원인은 성격 차이(48.6%)가 1위고 경제적 문제,배우자 부정,가족간 불화 순으로 돼 있다. 불행한 결혼보다 빠른 이혼이 나을 수도 있다지만 이혼은 누구에게나 상처로 남는다. 지지고 볶으면서도 서로 의지했다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모습은 결혼의 초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