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李대통령, 1년전 "유치" 특명…윤증현·사공일 총지휘

회의 유치 막전막후
"다음은 한국 차례다. "

지난 4월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G20 정상회의 비공개 회의 석상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3차 G20정상회의 개최지가 미국으로 확정된 후 내년 개최지 문제를 놓고 몇 개 나라가 경쟁하고 있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무게중심을 한국 쪽으로 확 쏠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 호주,한국지지로 돌아서

한국이 내년 11월 제5차 G20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되기까지 지난 10개월간 막전막후에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이 G20정상회의 유치에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1차회의 직후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 회의에서 귀국하자마자 G20유치 관련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 등을 중심으로 G20정상회의 기획조정위원회를 꾸렸다. 위원장은 사공일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일단 목표는 올해 9월 또는 2010년 4월로 잡았다. 하지만 당시는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나라의 부정적 기류가 있었던 게 사실.특히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G20체제에 반감을 드러냈다.

일단 우리나라는 '로키(low-key)전략'으로 임했다.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조용히 설득 작업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일본과 호주가 의욕을 보였다. G20회의가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개최됐기 때문에 그 다음은 아시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 전략을 수정했다. 올해 9월에 개최하기엔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계산에 따라 내년 4월에 집중키로 했다. 결국 9월 개최지는 미국으로 결정됐다.

런던 회의 이후 일본도 내년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정치상황이 걸림돌이 됐다. 아소 다로 당시 총리 지지율이 극히 낮고 8월 총선이 잡히면서 결국 뜻을 접었다.

한국 유치 전망이 밝아졌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5일 "당시 한국이 과연 세계적인 큰 행사를 열 수 있는지에 대해 선진국들의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며 "특히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유치 뜻을 보여 안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대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이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G20 공동의장인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한국 개최에 '바람잡이'역할을 했고 일본도 지원해줬다. 이런 노력 끝에 이번 G20회의에 며칠 앞서 20명의 '셰르파(sherpa · 사전교섭대표)'들은 한국 개최를 결정했다. 다만 막판 캐나다가 끼어들면서 내년 4월이 아닌 11월로 확정됐다. 2011년 프랑스 개최는 G20에 부정적인 사르코지 대통령을 달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4인방 큰 역할

한국 유치 과정에서 4인방의 역할이 컸다. 사공 위원장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각국을 돌며 래리 서머스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1대 1로 만나 설득했다. 국제 경제 · 금융계의 두터운 인맥이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G20재무장관 회의에서 '중재자'로서의 한국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다. 안호영 외통부 통상교섭 조정관은 '셰르파'로 활약하며 한국 개최 당위성을 집요하게 설득해 나갔다는 후문이다.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내년 G20정상회의 준비팀의 좌장격 임무를 부여받아 매끄러운 일솜씨를 보여줬다.

피츠버그=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