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생계형 환매' 내몰린 소액 투자자

서울 마포에 사는 직장인 A씨 부부는 2년 넘게 투자한 적립식펀드를 최근 환매했다. 이들은 2007년 초 각각 월 20만원을 넣는 적립식펀드에 들었다.

지난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금손실이 난 적도 있지만,올 들어 주가가 오르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해 환매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2억원에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인이 전셋값을 500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A씨는 "전셋값이 턱없이 뛰는 통에 투자원금 1200만원을 합쳐 1300만원 정도 되는 적립식펀드를 깰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A씨처럼 급등세를 보이는 전셋값을 대느라 월 10만~20만원짜리 적립식펀드를 환매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2007년 증시 꼭지에 가입한 투자자들도 주가가 떨어졌을 때 계속 넣은 덕분에 '물타기 효과'가 생겨 코스피지수 1500~1600 선에선 대부분 수익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선 펀드매니저들은 본전을 찾은 데다 대출 등으로는 치솟는 전셋값을 마련하기 어렵자 적립식펀드에 손을 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추세여서 전셋값 외에 생활비 교육비 등에 쓸 요량으로 적립식펀드를 중단하는 '생계형 환매'도 많다"고 말했다.

거치식펀드의 뭉칫돈이 빠지는 것보다 소액 적립식 계좌에서 환매가 많다는 얘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적립식 환매 계좌 수는 130만여개에 달한다. 상반기엔 월 평균 17만개 정도였지만 주가 상승과 함께 7월엔 26만5000개로 급증했다. 이에 대해 최봉환 금투협 전무는 "시장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꼬박꼬박 투자하면 만족스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어려운 사정 때문에 돈을 빼는 투자자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달 초 한국투신운용이 '나에게 펀드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펀드는 희망,꿈"이라고 답했다. 더구나 미국에선 경기회복이 시작됐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고,국내 주가도 눈에 띄게 회복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높은 실업률 등으로 소액 적립식펀드 투자자들이 '생계형 환매'로 내몰리면서 희망과 꿈도 함께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장경영 증권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