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獨총선 메르켈 승리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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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 정체성 혼돈…지지층 이탈, 경제위기속 친기업ㆍ감세정책 탄력지난 27일의 총선 결과는 독일 정국이 전반적으로 '우향우'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선거 직후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끝내고 친기업적인 노선을 강조하는 자민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사민당은 선거 패배로 당의 노선을 둘러싸고 심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독일연방공화국 건국 60주년이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해에 진행된 이번 총선 결과의 특징은 보다 강화된 보수 세력의 집권과 사민당의 추락,그리고 거대정당의 약화와 군소정당의 강화로 요약된다. 초과 의석을 포함한 622석 중 연합정부를 구성할 기민 · 기사련과 자민당의 의석수가 과반수를 훌쩍 넘긴 332석에 이르니,총선 결과는 보수 정당의 승리가 확실해 보인다. 주요 야당 세력인 사민당의 146석과 좌파당의 76석, 그리고 녹색당의 68석을 합친 290석에 비해 연합정부 세력이 의회에서 확실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됐고,총선과 동시에 치러진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의회 선거와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선거의 결과 역시 연방 상원에서도 기민 · 기사련이 다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보수 세력 중심의 국정 운영은 큰 장애 없이 가속도를 낼 전망이다.
반면 지난 총선에 비해 급격한 지지율 추락과 76석을 잃은 사민당은 당의 존폐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민당이 얻은 23%의 지지율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이다. 사민당의 급격한 추락은 무엇보다 혼돈에 빠진 당의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90년대 말의 '제3의 길'논의에서부터 시작된 당의 실용주의적 노선은 고정지지층의 급격한 이탈을 가져왔고,연금개혁과 노동시장의 개혁 과정은 사민당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의 불일치 문제로 당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지난 10여년간 집권 기간에 보여준 사민당의 방황은 지난 4년의 대연정 실패와 함께 당의 추락을 몰고 온 주요 요인이다. 사민당의 추락과 동시에 부각되는 보다 진보적인 좌파당의 급신장은 사민당의 정체성 혼동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 독일 정당정치의 기본 틀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정당의 급격한 약화와 군소정당의 뚜렷한 약진에 따른 다당제 구조의 정착이 바로 그것이다. 기민 · 기사련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득표율이 이전에 비해 1.4%포인트 낮은 33.8%에 머문 것과 11.2%포인트의 급격한 추락을 보인 사민당에 비해,군소정당인 자민당은 4.8%포인트의 지지율 상승을,그리고 좌파당과 녹색당은 각각 3.2%포인트와 2.6%포인트의 지지율 상승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으로 정당정치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독일 정당정치는 이번 총선 결과로 급격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 시한을 11월9일로 제시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는 이전보다'순도 높은'보수적 정파의 집권에 따라 줄기차게 주장해온 감세정책을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고,다수를 확보한 의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친기업적인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서 기업의 입장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 가동 시한의 문제는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독일 총선은 범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질서의 재편과정과 추세를 이해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정당정치에 있어 정체성 확립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정당의 정체성 혼돈은 유권자들의 신뢰 상실로 나타나고,이는 급격한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독일의 총선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당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면회 <한국외대 교수ㆍ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