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재개발 조례 위법"…서울 이어 수도권도 제동

법령보다 완화된 요건의 조례를 적용해 경기도가 지정한 재개발 정비구역을 취소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이 나왔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잇따르고 있어 수도권에서 재개발 구역지정 취소 청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판결이 개별 소송에 적용되면 재개발 구역 지정이 원천 무효화돼 현재 추진 중인 각종 재개발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정비구역 지정 과정도 허술"서울고법 행정4부(부장판사 윤재윤)는 안양시 주민 84명이 경기도와 안양시를 상대로 낸 주거환경개선사업(저소득층 주민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에서 조합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나 주택공사가 시행하는 재개발) 정비구역지정처분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주민들과 경기도,안양시가 모두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경기도는 앞서 2007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라 안양시 만안구 냉천지구 12만8600여㎡와 인근 새마을지구 19만2900여㎡ 부지를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고시했다. 해당 구역 일부 주민들은 이에 불복,소송을 냈고 지난해 10월 1심에서 이겼고 경기도와 안양시가 항소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우선 경기도 조례의 위법성을 문제 삼았다. 구역지정 당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시행령에서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경우 1985년 6월 이전에 지어진 무허가 건축물이나 위법시공 건축물로 노후 · 불량건축물에 해당되는 건축물의 수가 50% 이상인 지역을 구역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경기도 조례는 무허가나 위법시공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묻지 않고 노후 · 불량건축물이 50% 이상이면 구역으로 지정토록 함으로써 상위 법령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 지자체의 허술한 정비구역 지정 과정도 무효 요건으로 들었다. 재판부는 "냉천 · 새마을 지구에 대한 예비평가 현장조사는 조사원 14명이 7일 동안 진행했다"며 "광대한 면적에 걸쳐 있는 다수의 건축물(냉천 361동,새마을 450동)을 단기간에 적은 인력만으로 제대로 조사 · 평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도 밝혔다.

◆서울시 재개발도 '비상'

서울고법 판결로 수도권 중심으로 전국 재개발 사업장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와 서울시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은 각각 200여개와 210여개에 이른다. 법원 판결이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의 효력을 정지시키거나 다른 재개발 사업장의 구역 지정까지 자동으로 취소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사 사례의 재개발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주민들이 소송을 걸면 구역 지정이 취소된다. 경기도도 소송에 걸릴 조례를 적용해 신규로 재개발 사업장을 지정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지방의회가 조만간 조례 개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에서도 성동구 행당7 재개발구역 주민 62명이 지난 6월 서울시를 상대로 '정비구역 지정 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이 구역에서는 노후 · 불량건축물 기준 대신 주택접도율(도로변에 접한 주택 비율)과 호수밀도 기준이 문제되고 있다.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노후 · 불량 건축물(60% 이상) △주택접도율(40% 이하) △너무 적거나 모양새가 일정치 않고 길면서 좁은 필지수(50% 이상) △호수밀도(1만㎥ 당 60호 이상) △재해발생 우려지역 등의 요건에서 2개 이상을 충족하면 정비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냉천 · 새마을지구와 행당7구역 주민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화우의 손태호 변호사는 "도정법 시행령에서는 호수밀도나 접도율에 대한 명시적 기준이 없는데 이 두 가지만으로 구역지정을 가능케 한 것은 법령 위반"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호수밀도는 '건축물이 과도하게 밀집된 지역',접도율은 '정비기반시설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을 지정토록 한 시행령 조항에 부합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임도원/이호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