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뉴스] 김춘추는 드라마속처럼 정말 꽃미남이었을까?
입력
수정
김춘추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꽃미남이었을까?
사실 김춘추는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중 한명이고, 한반도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명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바로 그에 대한 사료가 매우 한정된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 특히 김춘추의 출생부터 청장년시절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김춘추의 ‘외모’에 대한 기록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드라마 캐스팅이 적합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
그나마 김춘추의 외모를 살펴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는 ‘화랑세기’뿐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위작문제를 논할 실력도 안되고, 아는 것도 없지만) 화랑세기를 사료로 인정해, 그에 의거해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화랑세기가 진본이라는 이종욱 서강대 교수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반론 역시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고대사의 설명을 풍부하게 하는데다 수천년간 숨겨졌던 진본이 소설처럼 내용을 드러냈다는 꿈같은 얘기가 현실화 된다면 그보다 좋은 소식이 없는 만큼 책이 진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언론에 소개된 학계 소식 뉴스(박창화의 원고와 권련된 각종 방증자료와 제3자인 외국학자들의 위작이라기 보다는 소설작품이라는 주장 등)를 접해본 인상은 결국은 위작에 가깝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화랑세기’에도 춘추의 용모에 대한 표현은 형식적, 관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화랑세기’ 18세 풍월주 춘추공조에 “세상을 구제한 왕이고 영걸한 군주며, 천하를 바로잡으니 덕이 사방을 뒤덮었다.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就之如日 望之如雲)”는 묘사가 나온다고 한다. 또 “얼굴이 백옥같고 온화한 투로 말을 잘했으며, 대지(大志), 즉 커다란 뜻이 있었고, 말이 적었고, 행동이 치밀하고 법도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모두 ‘귀티가 줄줄 흘렀다’는 식상한 관용적 표현들이 나열된 것일 뿐 화랑세기를 진본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용모 역시 문자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 싶다.(물론 이 말이 춘추가 추남이었다거나 평범한 외모였다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과연 잘생겼었는지 아니면 평범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것일 뿐.)
이같은 김춘추에 대한 아쉬운 외모묘사 부재와 대조적으로 중세 유럽사를 살펴보면 왕의 외모와 관련된 매우 친근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왕을 지칭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땅딸보왕 피핀, 대머리왕 샤를, 말더듬이왕 루이2세, 뚱보왕 루이6세, 미남왕 필리프, 팔이 긴 유리(유리 돌고루키), 붉은수염의 프리드리히(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처럼 신체적 특징을 직접 지칭하거나 경건왕 샤를, 우직왕 샤를, 대담왕 샤를, 고집왕 루이10세, 학자왕 헨리1세 처럼 왕의 성격적 특성을 톡 꼬집어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직 왕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기 전, 개인적 카리스마와 개인역량에 의존하는 전통적 지배 특성이 강하게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한국사에서도 이빨 개수로 왕을 뽑았다는 설화나 신라 초기 왕호에서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세계사에 유래가 드물게 커다란 남성 성기의 길이가 기록된 지증왕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간에 한 역사적 인물의 실상이 어땠는지를 접할 수 있는 정보, 기본정보가 부족한 데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김춘추 역을 맡은 배우의 귀엽고 출중한 외모에 절로 눈이 가면서 실제 김춘추의 외모는 어땠을까 하는 데로 생각이 이어졌다. 정말로 김춘추는 드라마속 배역처럼 멋진 꽃미남 이었을까?
<참고한 책> 이종욱, 춘추-신라의 피, 한국·한국인을 만들다, 효형출판 2009 ☞김동욱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사실 김춘추는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중 한명이고, 한반도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명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바로 그에 대한 사료가 매우 한정된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 특히 김춘추의 출생부터 청장년시절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김춘추의 ‘외모’에 대한 기록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드라마 캐스팅이 적합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
그나마 김춘추의 외모를 살펴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는 ‘화랑세기’뿐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위작문제를 논할 실력도 안되고, 아는 것도 없지만) 화랑세기를 사료로 인정해, 그에 의거해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화랑세기가 진본이라는 이종욱 서강대 교수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반론 역시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고대사의 설명을 풍부하게 하는데다 수천년간 숨겨졌던 진본이 소설처럼 내용을 드러냈다는 꿈같은 얘기가 현실화 된다면 그보다 좋은 소식이 없는 만큼 책이 진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언론에 소개된 학계 소식 뉴스(박창화의 원고와 권련된 각종 방증자료와 제3자인 외국학자들의 위작이라기 보다는 소설작품이라는 주장 등)를 접해본 인상은 결국은 위작에 가깝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화랑세기’에도 춘추의 용모에 대한 표현은 형식적, 관용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화랑세기’ 18세 풍월주 춘추공조에 “세상을 구제한 왕이고 영걸한 군주며, 천하를 바로잡으니 덕이 사방을 뒤덮었다.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就之如日 望之如雲)”는 묘사가 나온다고 한다. 또 “얼굴이 백옥같고 온화한 투로 말을 잘했으며, 대지(大志), 즉 커다란 뜻이 있었고, 말이 적었고, 행동이 치밀하고 법도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모두 ‘귀티가 줄줄 흘렀다’는 식상한 관용적 표현들이 나열된 것일 뿐 화랑세기를 진본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용모 역시 문자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듯 싶다.(물론 이 말이 춘추가 추남이었다거나 평범한 외모였다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과연 잘생겼었는지 아니면 평범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것일 뿐.)
이같은 김춘추에 대한 아쉬운 외모묘사 부재와 대조적으로 중세 유럽사를 살펴보면 왕의 외모와 관련된 매우 친근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왕을 지칭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땅딸보왕 피핀, 대머리왕 샤를, 말더듬이왕 루이2세, 뚱보왕 루이6세, 미남왕 필리프, 팔이 긴 유리(유리 돌고루키), 붉은수염의 프리드리히(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처럼 신체적 특징을 직접 지칭하거나 경건왕 샤를, 우직왕 샤를, 대담왕 샤를, 고집왕 루이10세, 학자왕 헨리1세 처럼 왕의 성격적 특성을 톡 꼬집어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직 왕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기 전, 개인적 카리스마와 개인역량에 의존하는 전통적 지배 특성이 강하게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한국사에서도 이빨 개수로 왕을 뽑았다는 설화나 신라 초기 왕호에서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세계사에 유래가 드물게 커다란 남성 성기의 길이가 기록된 지증왕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간에 한 역사적 인물의 실상이 어땠는지를 접할 수 있는 정보, 기본정보가 부족한 데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김춘추 역을 맡은 배우의 귀엽고 출중한 외모에 절로 눈이 가면서 실제 김춘추의 외모는 어땠을까 하는 데로 생각이 이어졌다. 정말로 김춘추는 드라마속 배역처럼 멋진 꽃미남 이었을까?
<참고한 책> 이종욱, 춘추-신라의 피, 한국·한국인을 만들다, 효형출판 2009 ☞김동욱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