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안 先시행 後보완] 정부, 전임자 임금 금지 '원칙' 위해 복수노조 '혼란' 감수

정부가 관련 법률 개정 없이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즉시 시행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원칙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비서진에게 "G20 회의까지 유치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마당에 모든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이들 제도를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진식 경제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9월 개각에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출신인 임태희 의원을 노동부 장관에 발탁한 것도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 도출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 정부 입장에서 원칙적 시행 방침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강공 드라이브로 선회

임 장관 취임 이후 청와대와 노동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이 마치 재계와 노동계를 압박하며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에 드라이브를 거는 분위기다. 실제로 '선진노사제도' 정착을 총괄하고 있는 윤 실장이 행정부처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 장관 역시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라"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노동장관에 임명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임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 등에서 "13년이나 미루고 있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를 이번에는 꼭 시행해야 한다. 이 문제가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후진적 노사관계의 틀을 바로잡는 핵심 개혁과제"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의원 시절에 다소 유보적 입장을 취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시절인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여러 차례 연기돼온 사안인 만큼 올해 안에 논의를 끝내야 하지만 시행 여부를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의 김성태 의원(한나라당)은 "임 장관 임명 뒤 청와대와 정부가 의외로 강경하게 나간다"며 "청와대가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이전에도 청와대와 노동부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으나 노사 당사자인 양대 노총과 재계는 물론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가 반발해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재계 안팎에서는 내년 1월 시행은 물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노사 당사자와 여야 의원들의 반발로 관련법을 개정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개정을 하더라도 최소한 2~3년 정도는 유예될 것으로 예측했다.

◆"섣부른 법개정은 혼란만"정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 없이 곧바로 시행하려는 것도 노동계 등의 반대가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모두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을 개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복수노조로 인한 혼란을 감수하면서라도 원칙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을 코앞에 두고 섣부르게 법을 개정해봐야 오히려 노사관계에 혼란만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노동부는 복수노조로 인한 혼란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당장 내년 초부터 수백여개의 복수노조가 난립하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복수노조가 조금씩 늘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추후 보완책을 마련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 재계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은 현장을 몰라 복수노조로 인한 피해를 간과하는 것 같다"며 "예상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만 시행한다면 현장 혼란은 단기간 내 수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마련한 타임오프(time-off)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에서 난색을 표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임자 임금 지급을 완전히 금지해야 노동현장이 안정되지,협상에 따라 전임자 수가 달라지는 타임오프제는 오히려 또 다른 노사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고경봉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