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찰음식

건강을 지키기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이 미국에만 11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채식이 심장질환이나 치매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현저히 낮춰준다고 믿고 있다. 이 가운데 150만명은 8~18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비만 방지 등의 목적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책 · TV를 통해 동물들과 친숙해졌기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게 된 경우도 상당수라니 재미 있다. (마크 펜 · 킨니 잴리슨 공저 '마이크로 트렌드')

채식에도 등급이 있다. 국제채식연합은 네 발 달린 동물의 붉은색 고기를 제외하고 조류 가금류만 먹으면 '세미(Semi) 채식',생선 해물 등만 섭취하면 '페스코(Pesco) 채식'으로 분류한다. 달걀 우유 벌꿀 등 동물에서 나오는 음식마저 거부하는 것은 '비건(Vegan) 채식'이다. 비건 채식의 비율은 1990년대만 해도 미국 전체 채식주의자의 5% 미만이었으나 지금은 절반 가까이로 늘었다.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채식문화가 있다. 바로 사찰음식이다. 절이나 지역마다 조리법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기와 오신채(五辛菜 · 마늘 파 달래 부추 흥거)를 사용하지 않고,인공 조미료 대신 버섯 들깨 날콩가루 등 천연 향료를 쓴다. 제철 재료를 이용해 짜거나 맵지 않게 풍미를 살려야 하고,끼니 때마다 준비해야 하며,반찬 가짓수는 적지만 영양분이 골고루 포함되도록 만드는 게 원칙이다.

이렇게 제한된 조건에서 조리되지만 그 종류는 적지 않다. 김치만 해도 백김치 보쌈김치 고수김치 고들빼기김치 갓김치 죽순김치 콩잎김치 우엉김치 깻잎김치 가죽김치 상추불뚝김치 등 다채롭다. 해인사의 가지지짐 · 머위탕,통도사의 두릅무침 · 표고밥,대흥사의 동치미 등 사찰별로 유명한 음식이 발달하기도 했다. 자연 재료에 스님들의 창의력이 보태져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전에 없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음식점이 여러 군데 새로 문을 열었고 연구소까지 생겼다. 수원 봉녕사에선 국내 첫 사찰음식축제인 '대한민국 사찰음식 대향연'(8~10일)도 열리고 있다. 사찰음식은 채식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이참에 사찰음식을 실생활에 맞도록 더 다양하게 개발하고,유래에 대한 스토리까지 입혀 문화상품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그렇지 않아도 한국음식 세계화 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해보는 얘기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