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5주년 다산경제학상 수상자 기고] 유병삼 연세대 교수

"주정뱅이 갈之자 걸음도 친구의 행로 알면 예측 쉬워져"
환율·국민소득·투자·소비 각종 데이터 흐름 분석하면 늘 랜덤웍 처럼 나타나
개별지표론 예측 어려워도 공통된 추세를 분석한다면 월등하게 정확성 높아져
한국경제신문이 경제학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다산경제학상 제28회 수상자로 선정된 유병삼 연세대 교수는 거시계량경제학의 권위자다. 경제지표 분석 시 공적분(共積分 · cointegration)의 개념을 적용한 연구로 경제 예측과 전망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학술지 인덱스 작성 기관인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선정한 '자주 인용된 논문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에 뽑히기도 했다. 다음은 유 교수의 수상 소감.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매우 큰 영광이다. 익명의 심사위원들과 그동안 필자를 지도하고 가르쳐 주신 스승님들,그리고 일가친척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따금씩은 열심히 해준 내 몸속의 또 다른 나에게도 감사한다. 주로 연구했던 분야는 넓게 말하여 계량경제학,그 중에서도 특히 거시계량경제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다. 개별 경제주체보다는 이들이 모인 집합체로서의 경제활동에 관한 실증분석에 특화된 분야다. 자료가 주로 시간에 따라 기록된 시계열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 분야를 시계열분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경제이론과의 연계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순수 시계열분석과는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경제학은 논리적인 이론전개와 실증분석이 상호 보완되어 발전해 온 학문이다. 수많은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움직이는 현실 경제는 너무나 복잡해서 그대로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기에 경제학에서는 현실을 단순화한 모형을 통해 이론을 체계화하고 이를 통하여 경제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좋은 경제이론과 모형은 단순하면서도 현실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서로 상충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어느 기준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형이 얻어지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학자들 간의 견해는 상당히 다를 수 있고 비슷한 견해가 그룹을 이뤄 학파가 형성되기도 한다. 때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생략한 부분이 현실 경제에서는 경제난국의 진원지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때면 경제학자들이 무능하다는 비난이 싸잡아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을 생각하면 단순화된 모형을 통하여 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결국 관건은 현명한 단순화인데,그 부분은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계량경제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렇게 현실을 단순화하여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느 모형이 더 바람직한가를 현실 자료에 입각하여 선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에 이어지는 과정으로 선별된 모형을 통한 경제분석과 예측의 수행도 역시 중요하고 큼직한 부분이다.

거시계량경제학 분야는 특히 8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크게 잡아도 대여섯 개의 굵직한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그 중에서 공적분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 단계에서 조그만 공헌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려면 우선 확률추세(stochastic trend)의 개념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계열은 장기와 단기를 아우르는 여러 성분들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단기성분은 단기적으로 매우 변동이 심한 성분이다. 반면에 장기성분은 시계열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신문 지면에서 자주 보는 주가지수 그래프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변화무쌍하지만 큰 시각으로 보면 천천이 움직여 나가는 큰 흐름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움직여 나가는 방향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확률적으로 천천이 변화하는 모습인데 이를 확률추세라고 한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시계열이 지니는 랜덤웍(random walk)성분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인사불성에 가까울 만큼 술이 취한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닮은 성분이다.

현실에서는 환율 및 각종 금융자산의 수익률과 같은 금융지표들,그리고 국민소득,소비,투자 등과 같은 거시경제지표에 이르기까지 경제 데이터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관찰되는 특징이다.

이러한 확률추세는 주로 회귀분석에 의존해 온 예전의 실증분석에서는 간과되었던 측면이다. 그러나 개별 시계열이 이런 성질을 지닌다면 회귀분석은 매우 독특한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바로 시계열들이 공적분된 경우다. 공적분이란 서로 다른 시계열들이 결합되어 개별 확률추세가 상쇄되어지는 특수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편한 예로 두 명의 만취한 주정뱅이가 있어서 제멋대로의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다고 하자.절친한 술친구들은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도 함께 다니는 성향이 있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공적분의 상황이다.

개별적으로는 진행 방향이 제멋대로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움직인다. 개별 주정뱅이가 술집을 나선 후 어디에 가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없이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면 주정뱅이 친구가 어디쯤 있을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예측할 수 있다. 장기예측도 개별 예측의 경우에 비하면 월등하게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반면에 공적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아무 관계가 없는 두 주정뱅이 경우에 비유된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도 다른 주정뱅이의 위치를 예측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확률추세를 지닌 경제변수들이 공적분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두 주정뱅이가 친구사이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에 따라 예측의 신뢰도에는 매우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주정뱅이 성분을 지닌 경제변수들이 술친구 관계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예측뿐 아니라 경제이론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관심사다. 다수의 경제이론은 경제변수들 사이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가 있음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적분이 되어있어야 합리화되는 이론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분의 개념과 분석수단을 최초로 연구한 사람들이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엥글(R.F. Engle)과 그레인저(C.W.J. Granger)다. 이들은 2003년 공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는데 나는 공적분에 관한 유명한 1987년 논문을 작성할 때 연구조교로 참여한 바 있다. 새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에서는 흔히 그러하듯이 그 작업에는 시행착오도 여러 번 있었고 때로는 지지부진하기도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찾아가는 재미로 열심히 일했으며 때로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으다.

지도교수께서도 나를 기특하게 생각해 그 논문의 후속 작업으로 필자가 제안했던 문제를 다룬 논문을 함께 작성하게 됐다. 이 논문은 공적분된 시계열의 장기예측치는 여전히 공적분됨을 보여주고 아울러 앞에서 언급한 두 분의 논문에서 완성하지 못한 공적분 검정을 추가한 것이다.

이 논문의 중요성은 공적분된 시계열의 경우 공적분 제약을 가하여 얻어진 모형과 그렇지 않은 모형의 장기예측에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인 점이다. 공적분 개념이 개발되던 당시에는 공적분의 중요성을 회의적인 시각에서 질문하는 학자들이 많았는데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인 셈이었다.

정리=이태훈/사진=정동헌 기자 beje@hankyung.com

◆약력

△1952년 충북 출생△1979년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졸업△1987년 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 박사(계량경제학 전공)△1994년~현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2003~2004년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2009년 1월~현재 한국경제학회 부회장△2009년 8월~현재 국가통계위원회 위원 겸 경제분과위원회 위원장
◆주요 논문

△공적분 체계의 예측과 검정(1981년)△계절적 변동의 통합과 공적분(1990년)△국제 경기 변동(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