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그럴 수도 있지'와 '그러게 조심하지'

박완서씨의 글 '성차별을 주제로 한 자서전'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 역시 내가 왜 그 아이를 때렸나보다는 계집애가 감히 사내아이한테 대들었다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집에서도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계집애가 그렇게 사나워서 무엇에 쓰냐는 걱정만 하셨다. 여자라는 게 모든 잘잘못 이전의 더 큰 잘못이 된다는 걸 나는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

사연인 즉 어린 시절,그가 땅에 그린 신여성 그림을 보던 또래 남자아이가 그림에 오줌을 갈겼다는 것이다. 참을 수가 없어 온몸으로 덤벼들었는데 변변이 맞서 보지도 못하고 울며 집으로 들어간 그 남자애의 엄마한테 붙잡혀 혼나고 얻어맞은 건 물론 자신의 어머니에게까지 호된 나무람을 당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결코 승복할 수 없었던 사실,여자라는 게 모든 잘잘못 이전의 더 큰 잘못이 되는 일은 과연 수십년 전 과거에 국한된 걸까. 몇 년 전 한 공립고교에서 남학생이 여자 교생의 치마 속을 휴대폰으로 찍어 문제가 됐다. 학부모의 태도는 둘로 갈렸다. 아들 가진 엄마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왜 짧은 치마를 입어"였던 반면 딸 가진 엄마는 "어떻게 그런 일이"였다. 논란 끝에 처벌은 '처음인 데다 반성했으니'라는 전제 아래 무겁지 않았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와 '그러게 알아서 조심하지'라는 식으로 여자에게 책임의 일단을 돌리는 사회적 인식과 시각은 '조두순 사건'으로 대표되는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왜 그리 낮은지,어째서 성폭행은 물론 아동 성폭행 사건 범인까지 툭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단적으로 전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같은 범죄를 호기심이나 순간적 욕망에 의해 남자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는 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여성이 원인의 일단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해도,길가다 끔찍한 일을 겪어도 '어쩌다 그런 일이'라는 반응 한편엔 '왜 노출 심한 옷을 입어서''왜 술에 취해서''왜 밤늦게 다녀서'같은 뒷말이 붙는다. 키가 작거나 몸집이 왜소한 남자,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남자는 매 맞고 성추행 당해도 괜찮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그런 일이 없는 걸 보면 분명 지금도 여자에겐 태어난 죄가 적용되는 게 틀림없다. 심지어 여덟살짜리가 학교 가다 당한 것에 대해서조차 '술에 취해서'라며 형을 감해 준다. 음주운전은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로 엄벌에 처해지는데 한 사람의 평생을 망가뜨리는 성범죄는 술에 취해 저질렀다는 이유로 용서된다는 것이다. 남자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지로 넘어가고 여자에 대해선 그러게 조심하지라고 몰아세우는 건 비단 성범죄에 그치지 않는다. 가정폭력도 그렇고 직장에서 남자 직원이 여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얼마나 약을 올렸으면'이라는 식의 뒷담화가 생겨난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에 대해선 법정 형량을 높인다,전자발찌를 평생 채운다는 등 각종 대책이 쏟아진다. 그러나 사건을 다루는 경찰과 검찰,법원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범죄는 근절은커녕 줄이기도 어렵다. 문제가 불거지면 이런저런 대책을 내놨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상태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아마 이번 사건도 머지않아 곧 "지겹다 그만 하자,무슨 좋은 소리라고 자꾸 되뇌일 것이냐" 할 것이다. 관용은 무질서를 부른다. 가해자는 풀려나고 피해아동과 부모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건 한 여성 의원의 말처럼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인권 유린이다. 정부는 차제에 성범죄 근절을 위한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선 집행유예 선고를 제한하고,아동 · 청소년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법관의 인식이 달라져야만 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