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도 執猶…法대로인가 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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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이후 법원 양형 잣대 도마에 올라A변호사는 최근 뇌물사건 피의자 항소심을 맡으면서 1심 담당 변호사로부터 관련 자료들을 넘겨받고 쓴웃음을 지었다. 자료 가운데 피의자 아들이 전국 수영대회에서 우승한 사진이 있었기 때문.A변호사는"피의자가'사회 기여'를 한 경우 형량을 깎아주는 관행이 있는데 '자식을 잘 키워 사회에 기여했다'는 취지로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전관예우 등으로 감경 사례 많아
8세 여아를 성폭행해 평생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법원의 양형기준과 검찰 기소방식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원의 온정주의와 전관예우 관행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특정사건에 대해 배심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심 형사공판사건 판결 중 집행유예 건수는 2006년 6만4577건,2007년 7만7215건,작년 8만2694건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집행유예와 1년 미만,1년 이상~3년 미만 징역형을 합하면 2006년 9만6652건(94.5%),2007년 11만3099건(94.6%),2008년 12만953건(94.8%) 등으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살인 · 강도 · 강간 · 성폭행 · 배임 ·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10명 가운데 9명이 징역 3년 이하 혹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있으며 그 숫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형사사건에서는 판사의 마음을 움직여 감경을 잘 받아내는 게 변호사들의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판사 출신의 B변호사는 "판사 재임 시절에 피의자의 자녀들이 보내온 편지에 마음이 약해져 다소 낮은 형을 선고한 적이 있는데 이후 소문이 났는지 갑자기 다른 피의자 자녀들의 편지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 현직 판사는 "10대 조직폭력배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들이 판사석 앞까지 무릎으로 기어왔다"며 "다른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이후 영장실질심사에서 무릎으로 기어오는 피의자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C검사는 "재판부가 피의자들에게 동화돼 온정적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전관예우의 수단으로도 악용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살인사건에도 집행유예와 감형이 빈번하다. 인천지법은 최근 돌이 갓 지난 친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학대치사)로 기소된 비정한 어머니에게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선고를 내렸다. 서울고법은 최근 5세 의붓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에게 오히려 1심 판결을 절반으로 낮춘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장과 판사 출신 변호사 사이의 친분 관계가 작용했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D변호사는 "전관예우는 지방법원에서 특히 심한데 얼마 전 지방으로 발령난 지인 판사가 소위 향판(지역 연고 판사)들이 자신을 배제하고 변호사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다고 털어놨다"며 "법관들이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배심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전고법 산하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조두순 사건뿐 아니라 성폭행 범죄에 대한 법관들의 양형감각을 질타했다.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은 청주지법이 최근 초등생 여아를 엘리베이터에 감금하고 성추행한 범인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을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 역시 청주지법이 최근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소녀를 돌아가며 성폭행한 일가족 일부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을 집중 성토했다.
구욱서 대전고법원장은 "앞으로는 성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에서 주취여부를 감경사유로 참작하는 데 신중을 기하겠다"고 답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