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 없이도 최고 복지 만든 '명문 勞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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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제약 노사화합 전통 주목정부와 노동계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노동계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반대를 명분으로 대규모 동투(冬鬪)를 예고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노조 중에서는 전임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無) 전임자 노조'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임태희 노동 방문 비결 청취
경기도 화성 제약공단에 위치한 명문제약은 대표적인 '무 전임 노조'다. 명문제약은 중견 제약업체로 직원 436명에 조합원은 72명이다. 20년의 역사를 가진 이 회사 노조는 2007~2008년에 걸쳐 1년6개월간 만 노조 전임자를 뒀다. 노사 간 깊은 신뢰로 전임자 없이도 노조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던 데다 조합원들 사이에 '모두 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14일 이 회사를 찾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자리를 가졌다.
◆반면교사로 쌓은 노사신뢰
명문제약은 멀미약인 '키미테'로 유명하지만 화성 제약공단 내에서는 모범적인 노사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1988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20여년간 이렇다할 노사 충돌 없이 상생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사측은 제약업계에서 처음으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데 이어 각종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는 등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에 공을 들였다. 연봉도 비슷한 규모의 업체들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이 회사의 노사화합은 모 제약사의 극심한 노사갈등이 '반면교사'가 됐다. 인근에 위치한 모 제약사는 20여년 전 노조의 극렬한 쟁의행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도산 위기로 내몰렸다. 잘나가던 제약사가 노조의 극렬 쟁의행위 이후 지금도 겨우 연명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문제약 노사는 이처럼 노사 간 충돌이 빚어낸 결과를 보면서 노조 설립 초기부터 상호 신뢰를 쌓는 데 주력해왔다.
◆일하는 노조 간부,배려하는 회사
명문제약에는 노조 전임자가 없다. 소필영 공장장은 "20~30명의 조합원으로 이뤄진 중소기업 노조도 1~2명의 전임자를 두는 곳이 많지만 명문제약은 '무 전임자'를 전통으로 여기고 있다"며 "근로자들 사이에 노조위원장이 먼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잠시 전임자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이 "'일하는 노조'는 좋은 전통인 만큼 되살리자"고 제안했고,노조가 이를 받아들여 노조 간부들이 다시 현업을 겸하고 있다. 근로자들 사이에 "바쁜 시기에 노조 지도부라고 해서 업무에서 빠지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측도 중요한 노조활동인 경우 근무시간에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송태현 노조위원장은 공장 시설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팀에 근무하면서 회사의 협조를 받아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 참석,조합원 고충처리 등의 노조활동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다. 송 위원장은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고충처리 등 실질적 활동은 회사가 유급처리해주니까 문제가 없고,오히려 같이 일하면서 활동하니까 조합원들과의 유대감도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회사가 종업원들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인식을 근로자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에 극렬한 노조활동의 여지가 적어지고 전임자의 필요성도 없어지게 된 것"이라며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측의 인식전환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